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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pr 19. 2019

프랑스 수녀원에서 일주일 #2

예전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마흔 생일에 수녀원에 들어가서 일주일을 지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녀는 그게 자신에게 주는 마흔 생일 선물이라고 말했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그분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일주일 동안 수녀원에서 뭐 했어요?”
“그냥 혼자 조용히 있었어요”

일주일 동안 수녀원에서 혼자 조용히 뭘 한다는 말인가. 그때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녀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고요와 기도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심연 깊은 곳에 빛나는 무언가에 대해 굳이 더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불과 삼 년 전 일이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일주일 동안 이곳에 와있는 것이다.

나는 파리 동역에서 남편의 배웅을 받고 기차를 타고 파리에서 한 시간 정도 지나 도착했다. 수녀원이 있는 조그마한 중세 마을은 역에서 약 사십 분 정도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있다. 역에서 오 분 만에 가는 버스도 있지만, 난 날씨가 좋을 때면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 것을 선호했다.


조금 숨이 차더라도 이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내가 속한 세상과 잠시 이별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너무도 아름다운 화창한 봄날이었다.



중간에 숙소를 담당하시는 안나 수녀님의 전화를 받았다. 수녀님은 내가 언제 도착하는지 물어보았다.


“수녀님, 저 지금 언덕 오르는 중이에요. 곧 도착해요”

일 년에 두세 번 보는 안나 수녀님이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운 마음이 왈칵 들었다. 언제부턴가 이곳에 올 때마다 안나 수녀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수녀님에게 말을 할 때면 마치 이 전에는 그 누구도 나의 말을 들어준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물론 결코 말이 적지 않은 나는 늘 무언가 말을 하고 있고, 감사하게도 내 주변에는 항상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나 수녀님과 이야기할 때처럼 누군가 내 말에 온전히 집중해서 들으면서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고 단지 사랑으로만 듣는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수녀님은 먼저 제안을 하셨다.


"함께 잠깐 시간을 내서 볼래?"


수녀님은 늘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조용한 장소로 나를 데려가서 내 말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끊지 않고 들어주었다. 나는 그런 수녀님에게 그때그때 나의 삶의 고민이나 두려움 들을 털어놓았다. 신기하게도 안나 수녀님과 이야기를 하면 나를 괴롭히던 의심과 두려움은 깨끗하게 사라지고, 마음에 사랑과 평화만 자리 잡았다.


불면이 지속될 때 수녀님과 이야기를 하면 그날 저녁은 마치 구름 위에서 자는 것처럼 단잠을 잤고, 식욕이 없을 때 이야기하면 다음 식사 때는 마치 처음 음식을 먹는 것처럼 모든 맛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먹었다.


수녀원에 도착하자 잠시 자리를 비운 안나 수녀님 대신 다른 투숙객이 맞아주었다. 아직 방이 준비되지 않아 저녁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라벤더 줄기를 뜨거운 물에 넣어 우려 마시면서, 호박 오렌지 쨈을 빵에 발라 먹었다. 따뜻하고 향긋한 라벤더 향기로, 마음이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후 정원에 가서 앉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꽃 냄새를 맡았다. 어쩌다 보니 이곳에 거의 사계절에 한 번씩은 오게 되었는데, 수녀원의 사계절은 모두 다르게 아름다웠다. 그중에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봄에는 수녀원의 정원이 향기로운 꽃으로 뒤덮였고, 식사 후 주로 산책을 가곤 하는 수녀원 뒤의 드넓은 초원에도 산뜻한 풀 내음과 깨어나는 땅의 냄새로 아름답게 버물려지고는 했다.


저녁 식사 후 평화스러운 마음으로 산책을 하고 있던 나는 연락 온 남편에게서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담이 불에 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세계적인 유산이자 종교의 상징이기도 하며 빅토르 위고를 비롯한 대가들의 소설의 배경이 된 노트르담 성당이 불에 타들어가고 있다니. 이 소식은 수녀원에 있던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인 프랑스 할머니는 말했다.

”파리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모두 달려갔던 곳인데.. 두 번이나 전쟁 중에서 살아남았던 곳이 어떻게 이렇게 탈 수 있지.. 그것도 공사로 말이야.”

사실 십 년 넘게 파리에 살면서도 노트르담 성당 안에 들어간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성당의 탑에도 걸어서 올라간 것도 이미 십 년 전 일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 때는 남편과 함께 노트르담 성당에 가서 일요 미사에 참여했었다.


그게 이 성당에서 우리가 참여한 첫 미사였다. 그리고 그때가 불에 타기 전의 노트르담 성당을 본 게 마지막이 되었다.


언제까지나 늘 그대로 있을 거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는데..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슬픈 일들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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