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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pr 21. 2019

프랑스 수녀원에서 일주일 #3


장미가 가시를 지니고 있음에 놀라지 말고, 가시에 장미가 있음을 감탄하라.


- 성 프란체스코 드 살-



부활절 주말을 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체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안나 수녀님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을 해달라고 했다.


여기에는 따로 고용하는 인력이 없이, 게스트를 담당하는 수녀님 두 분과 숙박객들의 자발적인 지원으로 관리가 된다. 게스트들은 식사 후 알아서 설거지를 하고 다음 테이블 세팅을 하며, 방을 나갈 때도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이 청소를 해놓고 나가는 게 원칙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 원칙을 이해하고 지키는 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식사 후 이곳에 처음 온 몇몇 이들의 표정에서는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보였다.


‘왜 내가 손님으로 와서 설거지를 해야 돼?’


하지만 식사와 방 외에도 수녀님 두 분이 부활절 준비를 하며  게스트들을 맞이하고 청소 및 빨래를 다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하루에도 한 번씩 도울 일을 물어보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카페테리아 및 계단 청소 등을 맡아서 했다.


연로하신 수녀님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뿌듯함 외에도, 이 곳에 소비자로 머물다 가고 싶지 않았다. 이 곳에 처음 온 사람들은 이런 내가 잠깐 여기 일을 도와 주로 고용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처음 이 곳을 왔을 때는 자기 집처럼 이 곳을 청소하고 아끼는 사람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소비의 논리는 뼛속 깊은 곳에 인처럼 박혀 있었다


하지만 이 곳에 처음 온지도 이년이 되어가고 있고, 이 공간이 나에게는 샘물 같이 목마를 때 언제나 올 수 있는 소중한 곳이 되어가면서 나 또한 변해가고 있었다.



이 곳에서의 나의 한 주의 일과는 매우 단순했다. 오전에는 주로 번역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거나 수녀님들을 돕고, 저녁에는 글을 쓰거나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하면 마음을 덥고 있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작지만 강한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잠시라도 빛을 본다는 것, 그건 희망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간절한 기도 뒤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여기 머무는 다른 이들과도 간간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 번은 내가 가톨릭 신자도 아닌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 곳에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수녀원에 자주 오는 한 사람이 말했다.


“여기는 가끔씩 불교 승려들도 와서 머물다 가고, 무슬림 이맘들도 머물다 가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곳이야. 여기 수녀님들도 사람들을 그들의 종교나 외적 조건들로 판단하지 않아.”


그녀의 말은 맞았다. 나는 여기서 오히려 사회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조건과 종교의 사람들을 만났다. 이곳에는 울타리가 없었고, 이곳에 와있는 이들의 다양한 이유와 사연을 존중했다.


그래서일까? 이 수녀원에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러 온 이들을 보면 시간이 갈수록 변해가는 게 보였다. 처음 왔을 때는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다가, 며칠이 지나면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눈빛과 미소를 자연스럽게 건네기 시작했다.


미소만큼이나 침묵과 눈물도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틀 전 언제나처럼 침묵 속에서 이뤄지는 점심 식사 시간 동안 누군가 갑자기 밥을 먹는 도중에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다른 곳에서라면 “왜 그래? 괜찮아” 하면서 걱정하는 눈빛으로 다들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여기서는 상대가 고요 속에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놔두었다. 침묵과 눈물을 존중했다.


그건 기도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시끄럽고 요란한 기도가 아닌 고요 속에서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고요 속에서 더욱 자기 자신이 되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고요한 곳에 왔다고 해서 마음이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빛이 강하면 어둠도 강하듯, 나는 평화로운 고요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을 경험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마음속에 그동안 꼭꼭 누루고 있었던 후회와 원망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마음 곳곳에 어둠이 깔리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다가 밤이 지나 아침이 찾아오듯, 어느 순간 마음에 깔린 어둠이 서서히 사라지고 빛이 들어왔다. 그럴 때는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고 잠시나마 깊은 평화가 찾아왔다.


낮과 밤이 하루를 이루듯, 어둠과 빛은 떨어질 수 없었다. 어둠이 없다면  빛을 기다리지도, 믿지도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에드몽 로스탕은 말했다.


빛은 밤에 믿을 때 아름다운 법이라고.


언젠간 낮 보다 환한 밤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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