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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y 30. 2019

04. 쿠바, 모든 것이 음악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시차도 있겠지만, 밖에서 들어오는 말소리, 웃음소리, 음악 소리에 눈을 안 뜨려야 안 뜰 수가 없었다. 숙소 앞 빵집은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른 시간부터 문을 열고 빵을 굽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온 거리가 들썩거릴만한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었다. 쿠바 사람들은 정말 깨어있는 모든 시간에 음악을 듣는 게 아닌가 싶다. 거리가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 집, 저 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는 사람들의 외침과 웃음소리가 버무려지면서 금세 즐거움과 활기로 가득 찼다.


“아니 뭐 저렇게 일찍들 일어나지”


5년 전에도 정확히 지금 이 방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는, 마찬가지로 잠에서 깬 엄마한테 말하자 엄마는 말했다.


“우리나라도 나 어렸을 때는 다들 새벽부터 일어나서 가게 열고 저녁 늦게까지 일했어. 엄청 부지런했지. 오죽하면 토요일에 쉰다고 하니까, 토요일에 쉬어서 어떻게 먹고 사냐고 걱정했다니까. 우리도 이렇게 된 지 얼마 안 됐어. 나는 이 소리가 사랑스러워. 활기차잖아. 삶의 소리가. 엄마 어렸을 때 선착장에 가면 이렇게 시끌벅적했어. 이것보다 더 왁자지껄했지."


"그러더니 어느새 점점 소리가 없어지더니, 언제부터는 길에서 캐럴송도 잘 안 들리더라고.”


나 역시 아바나에 처음 왔을 때 아바나의 전경보다 나를 먼저 맞이해 주었던 건 아바나만이 지니고 있는 이 소리였다. 인력거 소리, 음악 소리, 아이들 달리는 소리, 휘파람 소리, 거리 곳곳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말소리. 쿠바에서는 각각의 소리가 자신만의 멜로디와 리듬을 지니면서도 결코 겉도는 일이 없었기에, 모든 것이 음악이었다.


올드 아바나 ⓒ 주형원




쿠바인들의 대화 소리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들으면 마치 싸우는 것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일층에 사는 사람이 삼층에 사는 사람과 발코니에서 서로 대화하는 것이 일상이고, 발코니에서 길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다반사라 소리를 지르듯 외치며 수다를 떠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웃끼리 살인까지 벌어지는 ‘층간소음’의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이다. 쿠바 사람들은 시끄럽다는 게 무슨 의미 인지나 알까? 전에 여행할 때도 단 한 번도 여기서는 ‘시끄러워’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이들은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순간도 없다. 늘 누군가와 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통화 중이다.


사람을 만나서 말하기는커녕 통화조차 어느 순간 부담스러워 되도록이면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대부분의 대화를 해결하려는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게 부족한 쿠바에서는 자신을 고립시키면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구조이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실로 짠 베처럼 촘촘히 의존하고 있다. 일인가구가 그 어느 때보다 증가하고 있으며 혼술, 혼밥족이 늘어나고 있는 우리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경제와 기술이 발전한 사회의 가장 슬픈 일은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대체 가능한 존재로 여기는 순간부터 관계 역시 ‘재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사르트르는 ‘타인이 지옥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에서는 크게 불행할 일도 없겠지만, 아주 행복할 일도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진짜 지옥은 불행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라 불행과 행복이 둘 다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 않을까.


일찍부터 일어나서 기다렸다가 수라마가 차려준 푸짐한 쿠바 아침 식사를 먹었다. 그토록 그리웠던 쿠바식 아침 식사였다. 파파야 주스와 쿠바 커피, 구아바와 파인애플과 바나나와 계란 프라이 등으로 푸짐한 아침 식사가 한 상 가득히 차려졌다. 엄마는 ’너무 맛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이야’를 반복하며 행복해했고, 우리는 그 많은 음식을 감쪽같이 먹어치웠다.


아침을 먹고 거리로 나가자 내 기억 속의 올드 아바나 거리가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인력거 자전거와 올드카가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었고 뿌연 매연 연기가 거리를 뒤 덥고 있었다. 그 사이에 한 쿠바 아저씨가 나에게 와서 입술을 쭉 내밀고 ‘쪽’하는 시늉을 하고 갔다. 쿠바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와서 치근덕거리는 건 또 아니기에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있는데 엄마는 옆에서 ‘아니 우리 딸에게’라며 놀란 표정이었다.


올드 아바나 거리를 걷는 엄마 ⓒ 주형원


우리는 올드 아바나 거리를 지나 아바나의 명동이라는 오비스포 거리에서 헤밍웨이가 다이끼리를 즐겨 마시던 플로리디타 바에 갔다. 내가 오기 전부터 엄마한테 세계 최고의 다이끼리를 파는 곳이라고 자랑처럼 말했던 곳이다. 실제로 유명인이 자주 오던 곳은 그 명성 때문에 유지가 되는 곳들이 많아서 비싼 돈 내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대부분인데, 여기는 더 마시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될 만큼 맛있었던 곳이었다. 지금도 줄을 서서 들어가는 명소이다. 아침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옆에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자 엄마는 아쉬운지 말했다.


“여기서 다이끼리 시키면 어때?”

“저 바가 진짜 맛있으니까, 문 열면 저기서 마시자.”

“아쉬워서 그러지”


평소 술을 전혀 입에도 안 대고 살며, 나한테도 술 좀 그만 마시라고 늘 말했던 엄마는 폭탄선언을 했다.


“하루 종일 취해서 다니는 거지. 언제 그렇게 해보겠어.”


내가 자라는 동안 엄마는 늘 절제와 자기 통제를 말했다. 이건 일찍부터 많은 짐을 지고 살아내야 했던 엄마의 생존 수단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절제나 자기 통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고, 성인이 돼서도 술을 마시고 늦고 들어온 날은 꾸중을 듣곤 했다. 이런 엄마가 어제도 모히토 한잔하로 가자고 하고, 하루 종일 취해서 다니자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나 싶으면서도 엄마가 새롭게 보였다. 조금 어색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이 돼보는 것, 그건 여행자만의 권리이자 특권이었다. 그게 엄마라고 해도 말이다.




오비스포 거리를 걷고 있는데 한 바 근처에 엄청나게 많은 쿠바 사람들이 모여서 휴대폰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찍고 있었다. 호기심에 동한 엄마도 어느 순간 인파 사이로 사라지더니, 밖에서 안을 한참을 들여 보고는 다시 와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말했다.


“너도 가서 봐봐. 어떤 사람이 노래 부르는 데 진짜 끝내줘. 장난 아니야. ”


ⓒ 주형원

나는 우리의 돈이며 여권을 가지고 저 많은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게 위험하다는 판단에 그냥 여기 있겠다고 했고, 엄마는 다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사이에 내 바로 옆에 서있는 쿠바 사람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누구예요?”

“깐디도 파브레라고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 중 한 명이야.”

"무슨 음악을 하는데요?"

"손(son) 음악을 하는데 산티아고 데 쿠바에 살아"

“저 바에서 공연을 하로 온 거예요?”

“아니, 손님으로 왔다가 노래를 요청받고 즉석 공연을 하는 거야”


부에나비스타 클럽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손은 쿠바의 대표적인 음악 장르 중 하나로 아프리카 음악과 스페인 음악이 만나 쿠바의 오리엔테 주에서 탄생된 음악이다. 그래서 콤파이 세군도를 비롯한 쿠바의 대표손 뮤지션들은 오리엔테 지방의 산티아고 데 쿠바 출신이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깊이 있고 진한 애한이 느껴지는 손이 가볍고 경쾌한 살사보다 더 좋다. 그런데 이렇게 아바나 첫날에 길을 걷다 손의 거장을 만날 줄이야.


쿠바 손의 대가의 즉석 공연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고, 마침내 끝이 나자 엄마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끊임없는 찬사를 했다. 엄청난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다.


“와 진짜 쿠바의 조용필이야. 쿠바의 조용필. 장난 아니야. 관객을 휘어잡는 능력이며 카리스마가 최고야 최고. 진정한 소울이야.”


누군지 모르고 노래만 듣고도 대가라고 알아챈 엄마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렇게 손님으로 와서는 한 시간 가까이 즉석에서 온갖 혼을 쏟아대며 무료 공연을 하는 가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의 열정 덕분에, 엄마는 오랫동안 추억으로 기억될 쿠바 여행의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음악으로 들썩들썩했던 쿠바 첫날 일정은 엄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말레콘 석양과 함께 저물어 갔다.

 

말레콘 석양 ⓒ 주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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