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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y 27. 2019

별처럼 높은 그대   

한 취준생의 면접 이야기

며칠 전에 서울에서 스물 중반의 취준생 친구를 만났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인턴을 하던 친구인데, 그때 인연이 이어져서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고 한국 올 때마다 얼굴을 보고 있다.

그 친구는 얼마 전에 본 면접 이야기를 했다. 모 기업인데 삼차까지 가서 떨어졌는데, 차라리 떨어진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부터 들어가고 싶어 하던 곳인 거 같아, 의아한 내가 ‘왜?’라고 묻자 그녀는 그 기업의 ‘등산 면접’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기 면접 중 하나가 등산 면접이었어요.”

“등산 면접?”

자연을 좋아하고 걷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색적인 면접이라 생각하고 반색했다.

“**산에서 이뤄지는 면접이었는데”


그 산은 나도 저번 주에 남편과 같이 갔다가 초반부터 시작되는 가파른 경사길에 정상까지 가지 못하고, 이번 주말에 남편과 다시 가기로 한 곳이었다. 평소에 걷기를 즐겨하는 나와 남편에게도 결코 만만치 않은 산이었다.


“아 나도 저번 주에 남편이랑 거기 갔는데. 거기 생각보다 가파르던데.. 마지막은 루프 잡고 가잖아. 우리도 정상까지 못 갔어.”

“네. 맞아요. 근대 그 산에다가 전혀 길이 안 나있는 곳에 자체적으로 코스를 만든 거예요.”

“자체 코스를?”

“네. 도착해서 장갑을 나눠주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초반부터 루프를 잡고 가야 하는 곳이었어요.”




그래도 그 기업이 그런 고난도 테스트를 통해 보려고 했던, 인간적인 자질들이 있었겠지 하면서 듣고 있었다.

“저는 처음에는 등산 면접이라고 해서.. 서로 도와주고 협동하고.. 당연히 그런 걸 보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 거 아니었어?”

“아니었어요. 중간에 인원 체크하는 사람 빼고는, 같이 올라가는 관계자도 없었어요. 정상에서 도착한 시간만 체크해서 적더라고요.”

“진짜??”

“네. 심지어 중간에 같이 오르는 사람들이 다 같이 힘내자고 으쌰 으쌰 하는 분위기로 가니까, 인원 체크하던 관계자가 정색을 했어요. 이거 지금 경쟁이라고 하면서요.”

충격에 충격이었다. 아니 전문 산악 등산인을 모집하는 것도 아니고, 등산과 아무 상관없는 업종의 기업이 이런 기준으로 사람을 뽑다니.

“그래서 다들 진짜로 빨리 갔어?”

“네. 완전 레이스였어요.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요.

“끝까지 갔어?”

“네. 저는 죽을힘으로 끝까지 가기는 했는데... 훨씬 늦게 도착했어요. 그래도 포기 안 한 거에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어요.”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은? 결국 탈락한 거야?”

“네. 탈락했어요.”

자신도 결국 최종 면접에선 떨어졌다고 말하며, 그녀는 일말의 아쉬움 없이 말했다.

“저는 큰 회사를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면접을 보고 생각이 많이 변했어요. 이제는 규모가 조금 더 작더라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곳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러면서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사회생활을 제대로 겪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겪다 보니 느끼는 건데.. 사회생활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인 거 같아요.”

“근대 저는 제가 먼저 배려하고 차라리 손해를 보는 편이 마음이 더 편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이게 맞는 건가 싶어요. 사회생활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도 되고요.”

이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솔직히 너무 화가 났다. 너무나 투명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젊은 친구가 자기 자신을 의심해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그 자체가. 낙오자는 지나치고, 격려는 사치고, 오직 나 자신을 위해 빨리 오르라고 하는 사회가.


“다른 사람들 평가에 신경 쓰지 말아. 그런 평가보다 훨씬 더 소중한 사람이야. 그 사람들이 틀렸을 수도 있어.”

그녀는 반만 수긍이 간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끄덕였다. 이해한다. 나 역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같은 질문을 던졌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매 순간 던졌으니까. 하지만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반년 가까이 그녀를 지켜본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이 비겁했고 이기적이었던 그곳에서, 용기 있게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었고, 이익에 상관없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도왔고,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생각했던 그녀가 옳다고.


나 또한 결코 녹록지 않았던 직장 생활에서 사람에 대해 의심이 들 때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믿었다고.


그녀는 그 조직 안에서 가장 낮은 지위였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가장 높은 존재였다고.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든 변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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