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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y 24. 2019

산티아고 길의 인연

맨발의 순례자

산티아고 길 위의 순례자들 ⓒ 주형원


2013년에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었을 때였다. 많은 외국인 순례자들은 나에게 누군가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너 이 사람 알아?”
“아니”
“한국 사람인데”

아니 산티아고 그중에서도 프랑스 길을 걷는 한국 사람이 결코 적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이 길을 걷는 모든 한국 사람들을 안단 말인가.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럼 너는 이 길 위에 있는 너희 나라 사람들 다 아니?’라고 되묻고 싶은 걸 꾹 참고 친절하게 대답하곤 했다.

“아직 만난 적이 없어서 몰라”

그러면 그들은 나에게 그가 맨발로 이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다고 하며 경외의 대상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 그를 내가 모르는 게 신기하다는 정도였다. 오랜 프랑스 생활로 나름 데카르트식 사고방식이 자리 잡은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한 달 동안 이 길을 걷는 것도 힘든데 꼭 맨발로 걸어야 돼? 왜?’

어차피 똑같은 길 위에 비슷한 시기에 있으니 언젠간 한 번 만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특별히 만나고 싶은 마음도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가면서 다른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거나 전해 들으며,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어쩌면 나의 편견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진흙탕에 빠졌을 때, 다들 걸음을 재촉하는데 유일하게 그가 멈춰 서서 나를 도와줬어.”

그는 순례길 위에서 많은 이들을 돕고 있었고, 그가 준 도움과 따뜻한 포옹은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순례자들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그는 까미노 길 위에서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그를 만나지 못한 나는 800Km를 맨발로 걷는 기인에 가까운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가 더 이상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며, 같은 한국인인 나에게 그의 행방을 걱정하며 물어볼 때마다 생각했다.

‘그렇게 맨발로 걸으니 얼마 못 걷지’

하지만 우연히 산티아고 도착 며칠 전부터 자주 마주치던 한 한국 언니와 산티아고에서 저녁을 먹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길의 중반까지 그와 길에서 자주 마주치며 같은 숙소에 머물기도 한 지인이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 보이는 걸 보니 도착하지 못하신 거 같아요.”

“맨발로 걸으시다가 발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는데.. 중간에 카드에 문제가 생겨서 돈을 인출할 수 없는 한 한국인 순례자에게 본인이 가진 모든 돈을 주고 떠났거든요. 그래서 더 걱정이 돼요. 돈도 없으신데 혹시 무슨 사고가 났을까 봐요.”

나는 언니의 말을 들으며, 내가 그에 대해 지니고 있던 이전의 나의 생각들이 나의 편견과 오만 그리고 고정관념에서 비롯되었음을 뉘우쳤다. 최소한의 짐으로만 살아가는 산티아고 길 위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남에게 주고 떠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적어도 과시용으로 맨발로 이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언니와 함께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런 선행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가 도착한 산티아고, 이 길의 끝에 결국 도달하지 못했음을. 그런 후 그를 잊었다.


까미노를 상징하는 노랑 조가비 ⓒ 주형원


산티아고 길 위의 남편 ⓒ 주형원


그다음 해인 2014년에 남편과 함께 일주일 동안 산티아고 북쪽 길을 걸었다. 삼 일째 되는 날이었던가. 우리는 알베르게에 늦게 도착했고, 남은 침대가 없어 주방 바닥에서 자게 되었다. 주방은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잠잘 시간이 되어야만 침낭을 깔 수 있기에 피곤해도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까미노를 온 중년 한국 커플 중 아내분이 들어오더니 함께 차를 마시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오늘 처음 보는 분이었지만,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저희 남편은 맨발로 걷고 있어요. 텐트랑 다 가지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작년에 그분이 떠오르며 생각했다.

‘한국에서 산티아고 맨발로 걷기가 유행인가’  

그리고 말했다.

“작년에 저 혼자 프랑스 길을 한 달 동안 걸었는데... 그때도 그런 분이 있으셨어요”

그러자 그 여자분은 깜짝 놀라 하며 물었다


“그게 언제였어요?”


“작년 6월이요”


“저희 시숙이에요”

전혀 다른 길에서 다른 시간에 이렇게 간접적으로 다시 인연이 이어진다는 게 신기했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분 다들 걱정 많이 하던데... 산티아고는 도착하셨나요?”

“네. 산티아고 도착한 후 거기서 또 반대로 걸어서, 두 번 걷고 무사히 잘 돌아왔어요.”

우리는 알베르게 자원봉사자가 이제 자야 한다고 불을 끄러 들어올 때까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잠을 자기 위해 부엌 바닥 위에 침낭을 깔고 누운 나는,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소리 없이 흘렸다. 세 번째 올라선 산티아고 길이었고, 나는 이때 처음으로 길에서 '믿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단지 나 자신의 치유 혹은 가까운 이와의 관계의 회복 및 내 인생에 대해 사유할 시간을 갖기 위해 길에 올라섰는데 말이다.

만약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면.

나보다 더 깊고 높으며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존재가 나의 아니 우리의 발길을 늘 인도하고 있다면.

그 이후 시간이 지나 나는 <여행은 연애>라는 산티아고 순례길 및 쿠바 여행책을 썼고, 남편과 두 번의 산티아고 길을 더 떠났다. 그럴 때마다 내심 ‘이번에는 만나겠지’ 하며 기대했지만 단 한 번도 그를 길 위에서 보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들었던 그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물었다.

“그 후로 만난 적은 있어?”

“아니”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로 책을 썼지만, 나는 다른 이들에게 산티아고 길을 걸은 이야기를 할 때면 정작 내 책에는 없는 그의 이야기를 늘 빼놓지 않고 했다. 그건 아마 그가 내 이야기 중 직접 만나지 못한 유일한 사람일 뿐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느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산티아고 대성당 ⓒ 주형원




<항상 너 자신이 되어라> 까미노 길에 누군가 써놓은 글 ⓒ 주형원


그러다가 얼마 전 서울에서 만난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그분 저희가 아는 분인 거 같은데.. 매년 산티아고를 맨발로 걸으시는 분인데..”

“저는 그분이 그때 처음 산티아고 길을 걸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랑 다른 분 같은데요.”

그분에 대해 서로 알고 있는 정보들이 달랐기에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마음에 이름을 물어봤고 이름 대신 불린다는 예명(?)을 적어왔다. 특별히 찾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확신했기에.

며칠 후 친구가 자신이 아는 카페라며 데려갔는데, 그 카페는 산티아고 순례자 부부가 운영하는 서촌에 있는 ‘카페알베르게’였다. 그날 처음 만난 주인과 함께 서로의 산티아고의 추억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하던 중, 혹시 이 분은 알까 싶어 ‘한국인 맨발의 순례자’ 이야기를 하였다.

주인은 자신도 여기 오는 몇몇 손님들로부터 얼핏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지만, 본인이 직접 알지는 못하고 만난 적도 없다고 했다. 김이 빠진 나는 이곳에 나를 데려온 친구에게 말했다.

“혹시나 했지. 아니 며칠 전에는 누가 본인이 아는 사람이 아닌가 하더라고. 분명히 아닌 거 같은데”

“이름 있어요?”

“아니 예명 같은 걸 줘서 적어오긴 했는데.. 아닌 거 같아.”

“찾아보면 되죠.”

그러더니 그는 네이버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검색을 했지만 물론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역시나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자 그는 무슨 소리냐며 나를 보고 말했다.

“여기 나오는데요?”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없는데..”

알고 보니 나는 예명을 잘 못 적어 왔고, 동행은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던 예명을 또 잘 못 들어서 제대로 찾게 된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일까. ‘맨발의 순례자'는 자신의 순례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다가 도중에 말았는데, 글을 읽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가 첫 까미노를 걷기 시작했을 때는 2013년 6월, 내가 프랑스 까미노로  혼자 떠났을 때였다. 그는 정확히 내가 길을 시작한 지 이틀 후에 까미노를 시작했고, 우리는 이틀 차이로 길에서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가능한데...’

나는 인터넷의 한 카페에 올려져 있는 그의 전화번호를 찾아 바로 연락을 했다. 몇 가지 확인 끝에 그가 내가 찾는 ‘한국인 맨발의 순례자’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대전에 머문다고 했는데, 나는 그다음 날 남편과 같이 세종에서 친구를 만나고, 그 다음다음 날 아는 수녀님을 만나러 울산에 가기 위해 대전을 거칠 예정이었다.

그에게 혹시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겠냐고 묻자 그는 흔쾌히 승낙했고, 심지어 남편과 나를 보기 위해 터미널로 나와 주었다. 우리는 세 시간 후에 다시 떠나야 했기에 터미널의 한 카페에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남편도 나도 이미 오래전부터 봤던 사람처럼 아무런 어색함이 없었다. 신기했다. 산티아고 길이 아닌 대전에서,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시기에 까미노 길에서 시작된 인연을 만난다는 것. 만나야 할 인연은 반드시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것. 그건 어쩌면 산티아고 길이 삶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이자, 그 길이 남편과 나로 하여금 그를 만나도록 여기까지 안내한 걸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와 헤어지면서 숙제를 주었다.

“행복과 기쁨 그리고 평안이 뭐가 다를까요? 제가 두 분에게 내 드리는 숙제예요. 답은 다음번에 만날 때 말씀해 주세요~”


그때가 아닌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만나야 했기에, 같은 길을 비슷한 시기에 걸으면서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다시 꼭 만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미 만나기까지의 과정 그 자체가 인연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건 또 산티아고 길 만이 알고 있겠지


산티아고 길 위에 누군가 조약돌로 써놓은 <부엔 까미노> (좋은 길 되세요) ⓒ 주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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