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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06. 2019

05. 헤밍웨이와 쿠바

쿠바에 와서 엘 플로리디타 바에서 헤밍웨이가 매일 아침 마시던 다이키리를 음미하지 않고,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서 헤밍웨이가 그토록 사랑하던 모히또를 훌쩍여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쿠바에 와서 헤밍웨이가 살았던 곳이나 생전에 사랑했던 장소들에 가보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헤밍웨이의 숨결은 쿠바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삼십 년 가까이 쿠바에서 살았고, 쿠바에서 추방되던 다음 해 자살을 하였다. 자신의 노벨상도 쿠바 국민들에게 바쳤던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와 <노인과 바다>와 같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명작들을 쿠바에서 집필하였다.


쿠바에서 더 지낼 수 있었다면, 그래도 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였을까?


헤밍웨이가 그토록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떠나야 했던 곳. 노벨 수상 소감에서 자신을 쿠바의 입양아라고 말했던 헤밍웨이의 영혼의 고향 쿠바에는 아직까지도 그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엄마와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헤밍웨이 인 하바나>라는 영화를 함께 보았다. 미국의 기자인 마이어스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삶을 살아나갈 용기를 준 미국의 대작가 헤밍웨이에게 편지를 써놓고도 부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연인은 그 편지를 발견하고는 몰래 헤밍웨이에게 부친다. 그는 얼마 후 헤밍웨이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고, 아바나에 와서 함께 낚시를 하자는 믿을 수 없는 초대를 받게 된다.


<헤밍웨이 인 하바나> 중

이 모든 이야기는 실화이다. 영화는 마이어스와 헤밍웨이의 실제 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실제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살았던 집에서 촬영되었다. 마이어스는 낚시를 하러 오라는 헤밍웨이의 초대를 받아들여 아바나로 가서 그를 만난다. 고아로 자란 그는 헤밍웨이에게서 제2의 아버지를 찾고, 마이애미와 아바나를 거의 모든 주말마다 오가게 된다. 그렇게 쿠바에서의 헤밍웨이의 마지막 7년의 삶을 지켜보게 된다.


이 7년은 미국의 지배 아래 있던 쿠바가 혁명을 통해 바티스트 정권을 물어내고, 또 그런 혁명을 암암리에 도왔던 헤밍웨이도 결국 쿠바에서 추방되고 말았던 기간이다. 쿠바의 혁명은 성공했지만, 쿠바를 떠나게 된 헤밍웨이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수단으로 생을 마감한다. 한 국가의 운명과 위대한 한 개인의 운명이 맞물리고 또 엇갈리는 순간이다.


이 영화에는 우리가 알던 대가 헤밍웨이가 아닌 인간 헤밍웨이의 모습이 여과 없이 그려진다. 지상 낙원 같은 자신의 대저택 핑카 비히아(Finca Vigia)에서 권총을 들고 자살하겠다고 한바탕 소동을 부리고, 함께 사는 세 번째 부인 마사와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죽일 듯이 다툰다.


그러면서도 삶의 마지막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그의 삶의 마지막 7년이다. 헤밍웨이는 실제 인물이자 영화의 주인공인 마이어스에게 말한다.


“인간이 갖는 소중한 가치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다는 거야”


작가 헤밍웨이의 삶이 아닌 인간 헤밍웨이의 삶을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영화 끝에 많은 여운이 남았고, 엄마는 영화를 보고 말했다


“쿠바에 가면 꼭 헤밍웨이가 살았던 곳에 가보자”


아바나 첫날 오후에 헤밍웨이가 칠 년 동안 한 객실을 빌려 지냈던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 갔다. 그가 지내던 방은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어 방문이 가능하다. 탁자 위의 창문으로 아바나의 시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방이었다. 헤밍웨이는 이 곳에서 지내던 칠 년 동안 저 풍경을 보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를 집필했다.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 방에서 그는 매일 치열하게 써 내려갔고, 대작을 완성시켰다.  


암보스 문도스 호텔의 헤밍웨이가 7년 동안 머물면서 집필했던 객실 ⓒ 주형원


암보스 문도스 호텔의 로비는 마치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은은하고 고급스러웠지만, 사실 이 호텔에서 헤밍웨이 객실 다음으로 꼭 가야 하는 곳은 아바나 시내가 한눈에 내다 보이는 옥상에 위치한 테라스이다. 우리가 헤밍웨이의 객실을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자 엘리베이터 안내원인 쿠바 남자는 우리에게 말했다.


"꼭 옥상의 테라스를 들렀다 가세요. 거기서 모히또를 한 잔 해도 되고요"


암보스 문도스 호텔 테라스에서 내다본 아바나 전경 ⓒ 주형원


헤밍웨이 역시 자신의 방에서 글을 쓰다가 힘들거나 지치면, 걸어서 바로 십분 내의 거리에 있는 엘 플로리디타 바나 보데기토 델 메디오 바에 가서 쨍쨍한 다이키리나 달콤한 모히토를 마셨을 것이다. 헤밍웨이 덕분에 지금도 이곳들은 줄을 서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널리 알려졌듯이 헤밍웨이는 애주가였다. 모히또는 특별히 맛있다는 느낌이 안 들었지만, 플로리디타의 다이끼리는 정말 특별하다. 물론 그렇다고 헤밍웨이처럼 아침 열 시에 와서 연달아 열 잔 이상을 마실 엄두는 나지 않지만 말이다.


플로리디타 바의 다이끼리


얼음이 들어가 쨍한 느낌이 럼의 높은 알코올 지수를 잊게 만들고, 맛이 달콤하면서도 세련되서 한 번 마시면 잊기 힘든 특별한 맛이다. 여기서 내 인생 첫 다이끼리를 마시고 그 맛을 잊지 못해 이후에도 여러 군데서 마셔 봤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이곳처럼 맛있는 다이끼리는 없었다. 엄마도 첫날 이곳에서 다이끼리를 마시고 감탄을 연달아했다. 이곳에서 공연하는 밴드의 수준도 웬만한 콘서트 못지않아서 술만 아니라 음악에도 취하기 쉬운 곳이다.




아바나에서 삼십 분 정도 벗어나면 그가 그의 세 번째 부인 마사와 함께 산 넓은 대저택 핑카 비히아에 가게 된다. 엄마와 나는 가는 김에 핑카 비히아를 갔다가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의 영감을 받은 코히마르까지 다녀오기 위해 길에서 대기 중인 올드카를 대여했다. 아바나에서 사십 분 정도 갔을까. 우리는 딱 봐도 굉장히 넓은 대저택의 입구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자 엄마와 나는 감탄을 연달아 하기 시작했다.


“우와 여기가 천국이다”


넓은 초원과 수영장, 큰 저택과 언덕. 영화 속 헤밍웨이는 이 곳에 자주 친구들을 초대하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 집은 헤밍웨이의 소유가 아닌 헤밍웨이의 세 번째 부인 마사가 사들여서 쿠바를 떠날 때 쿠바 정부에게 물려줬던 유산이다. 지금은 헤밍웨이의 박물관이 되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오는 곳이다.


핑카 비히아 ⓒ 주형원


“어떻게 이런 곳에서 매번 자살을 하겠다고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이런 천국 같은 곳에서 말이지..”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마지막으로 글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절망하고 좌절했으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런 평화스러운 곳에서 마음의 지옥을 경험했을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위대한 예술가란 평범한 행복에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다음에 우리는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코히마르로 향했다. 떠나기 전에 기사 아저씨는 굳이 코히마르까지 가겠다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는 바다 빼고는 아무것도 볼 게 없어요. 그냥 조그마한 어촌 마을이에요”


하지만 언제 이 명작의 배경이 된 바다를 직접 볼 수 있겠는가? 나도 엄마랑 함께 와서 일부러 거기까지 가는 거지, 지난번에 혼자 왔을 때는 일부러 찾아가기에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해 가지 않았던 곳이다. 하지만 도착해서 눈앞에 펼쳐진 깊은 푸른색 바다를 보고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낮과 밤이 들썩거리는 아바나에서 잠시 벗어나 한적한 어촌 마을에 있으니 마음이 절로 평온해졌다.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환호하며 말했다.


“너무 아름답다. 이 바다 색깔 좀 봐봐. 색깔만 봐도 수심이 깊은 바다야. 왜 여기서 노인과 바다가 나왔는지 알 거 같아”


코히마르 ⓒ 주형원


이 곳은 술만큼이나 낚시를 사랑했던 헤밍웨이가 자주 낚시를 하러 왔던 곳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고, 창작의 고통에 끊임없이 시달렸던 그의 유일한 진정한 안식처는 바다였다. 이 바다를 보며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인 산티아고의 실제 인물이었던 쿠바 어부를 만나 종종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진한 푸른빛의 바다 위에 정오의 강한 햇살이 내려앉으면서 파도가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헤밍웨이는 여러 곳에서 살았고 많은 곳을 여행했기에, 종종 여행을 하다 보면 헤밍웨이가 즐겨갔던 장소들을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쿠바가 특별한 이유는 쿠바는 헤밍웨이가 이 곳에 살았던 시대와 비교하여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걷다 보면 어디선가 그가 튀어나올 것 같다는 착각이 들곤 한다.


아마도 쿠바와 쿠바인들 만큼이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아래 구절이 어울리는 곳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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