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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13. 2019

06. 쿠바의 소울, 산티아고 데 쿠바

5년 전 약 한 달 반 동안 쿠바 전역을 여행한 후 제일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라고 대답했다. 아바나부터 서부의 비냘레스를 거쳐 천천히 쿠바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동쪽 끝에 있는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쿠바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어느 정도 쿠바를 봤다고 자신했던 나는 산티아고 데 쿠바에 와서야 진정한 쿠바의 소울을 느낄 수 있었다.


16세기와 17세기에 쿠바의 수도였던 산티아고 데 쿠바는 지금은 쿠바 제2의 도시이다. 아프리카-쿠바 문화의 근원지로 손과, 볼레로, 전통 트로바 등 쿠바 대표 음악 장르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잘 알려진 콤파이 세군도도 이곳 산티아고 데 쿠바 출신이다. 매년 여름 이곳에서 열리는 카니발은 중남미를 통틀어 리우 카니발 다음으로 규모가 제일 크고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산티아고 데 쿠바의 카니발 (출처: drink tea travel)

Terre caliente (뜨거운 땅)으로 불리는 이곳은 날씨도 사람도 유독 뜨겁다. 쿠바가 식민지였을 때, 산티아고 해협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많은 노예들을 들여와서 인종도 문화도 쿠바에서 가장 아프리카적인 도시이다. 쿠바인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관능미 넘치는 초콜릿 빛깔의 쿠바인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슬픈 노예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산티아고는 현재는 쿠바의 자유와 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쿠바 혁명의 시작을 알린 몬타카 병영 습격이 일어난 곳도 산티아고이고, 이전 식민지 정권에 맞선 독립전쟁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피델도 이곳을 쿠바 혁명의 요람이라고 불렀다. 매번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각오하고 들고 일어섰던 도시답게 산티아게로들은(쿠바에서 산티아고 태생의 쿠바인들을 지칭하는 말) 끓는 피를 지닌 자유인들이다. 


산티아고 입구에 있던 표지판 '어제의 반란군, 오늘은 당신을 환영하는 도시, 언제나 영웅'

카리브 해안과 시에라 마스트라 산맥 사이에 위치한 산티아고의 길들은 좁고 경사지며 바다가 내다보인다.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진한 배기가스 연기를 배출하며 시내 중앙을 달린다. 저녁이 되면 도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피에스타(축제)들이 열리며, 도심 한복판의 광장에서도 다양한 연주회가 열리기에 도시는 쉴 새 없이 들썩거린다. 이곳에서는 삶도 사람도 소울로 가득하다. 억압도 가난도 산티아게로들의 영혼을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 주형원


산티아고 데 쿠바는 쿠바의 동쪽 끝에 있어서 일정상 이곳까지 들리지 못하고 가는 여행객들이 많지만, 나는 엄마에게 여기는 쿠바에서 꼭 가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지난번 여행과는 반대로 아바나에 도착해서 며칠을 보낸 후, 비행기를 타고 바로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간 후에 버스로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는 일정으로 짰다. 


아바나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는 비행기로는 한 시간 반이면 가지만, 매일 항공편이 있는 게 아니고 시간도 이른 아침 아니면 저녁에만 있어서 오전 비행 편으로 미리 예약을 해놓았다. 수라마에게 물어보자 새벽 네 시 반에 민박집에서 출발하면 된다고 한다. “택시 필요해?”라고 해서 그렇다고 하자 그녀는 자신이 불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새벽 네 시부터 일어나서 나와보니 운전기사는 보이지 않고, 수라마는 어딘가 계속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구나’ 생각하는데, 수라마가 와서 말했다. “원래 오기로 했던 사람이 차에 문제가 생겨서 오지 못해서 다른 사람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내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라 아예 오기로 한 사람이 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되고 있는 상황인 거 같은데, 책임감 강한 그녀는 차마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새벽 네 시에 어디서 차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쿠바는 한국처럼 새벽 내내 거리에서 택시가 다니는 곳이 아니었다.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했고, 한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해놓은 이 비행 편을 놓치게 되면 어쩌면 산티아고는 이번 여행에서는 가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라마가  “내 삶. 내 사랑. 너무 고마워. 나를 구해줬네.”라고 쿠바인 특유의 애교를 잔뜩 부리며 전화에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웃에 사는 사람인데 지금 당장 준비해서 오겠다고 했으니, 십오 분 이내로 도착할 거야” 


얼마 후에 도움을 주기로 한 이웃 남자가 도착했고, 엄마와 나는 차를 타로 내려가서는 감탄을 했다. 엄마가 이번 쿠바 여행에서 한 번쯤 타보고 싶어 했던 잘빠진 올드카가 어스름한 아바나의 골목길에 자체 광을 내며 서있었던 것이다. 속으로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흥분한 엄마도 차를 타고 가면서 말했다. 


“차 너무 멋진데. 이렇게 드디어 올드카를 타보네” 


ⓒ 주형원



ⓒ 주형원

새벽에 아바나 공항에 도착해서 오전 중에 산티아고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민박집으로 향했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예약한 이 쿠바 민박집은 산티아고 쿠바 뮤지션의 집으로 녹음 스튜디오도 집 안에 있다고 했다. 산티아고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너무도 따뜻하고 평온한 인상의 한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자신을 소개하며 반갑다고 했다. 아주머니를 보자마자 마치 잠깐 외출 후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아주머니 인상이 너무 좋다. 여기서 굉장히 편안히 있다 갈 수 있을 거 같아”


새벽부터 일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비행기를 타고 온 우리를 위해 아주머니는 아침을 차려 주시겠다고 했다. 옥상에 테라스가 있으니 거기서 먹는 게 어떻겠냐며 올라가 기다리라고 했다. 엄마와 나는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자 환호를 연발아 했다. 예술가의 집답게 테라스도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쿠바의 형형색색의 집들과 저 멀리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푸르른 카리브 해안도 보였다. 엄마도 감탄하며 말했다.


“여기만 있어도 벌써 너무 좋다” 


ⓒ 주형원


쿠바에 나의 고향이라는 곳이 있다면 거기는 단연코 산티아고 데 쿠바이다. 한 달 동안의 쿠바 전역 여행으로 어느 정도 지쳐가기 시작할 때 이곳에 와서 수많은 삐끼들을 길에서 보고 질겁을 했다. 조심하라는 민박집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밤에 나가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바라코아로 떠났다. 바라코아로 가는 길에 트럭 버스에서 산티아고의 형제들을 만났고, 진정한 산티아고를 보여주겠다는 말에 아바나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리게 되었다.


이들 형제 덕분에 산티아고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의 명물 이자벨리카 카페에서 아침에 달달한 쿠바 커피를 마시고,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산티아고를 누비고, 저녁에는 광장에서 쿠바인들과 함께 살사, 바차차 등의 음악에 맞춰 열심히 몸을 흔들었다. 카페에서든 광장에서든 늘 자연스럽게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여기를 떠나기로 한 날을 하루하루 미뤘었다. 그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 바로 여기 산티아고 데 쿠바였다.


나의 쿠바 고향에 이렇게 5년 만에 엄마와 함께 돌아온 것이다. 산티아고 데 쿠바의 거리들을 다시 보자 5년 전 기억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끔 살아가면서 너무 행복했던 추억들은 꽁꽁 묶어서 마음 깊은 곳에 감춰 놓고는 한다. 이 추억들이 몰려오면 마치 댐이 무너지듯 내 현재가, 일상이 무너질까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이곳에 다시 와 있는 지금, 더 이상 이 기억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 주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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