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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20. 2019

07. 쿠바의 슬픈 단면

빛이 거의 없는 어둡고 구불구불한 산티아고의 골목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나는 말다툼을 시작했다.

 

“엄마 그렇게 큰돈을 팁으로 주면 어떻게 해?”

 

“연주가 너무 좋아서 감사의 표시로 준 건데…”

 

“그게 거의 쿠바 현지 두 달 치 월급 이야. 그런 큰돈을 팁으로 주는 게, 저 사람들과 저 사람들의 음악을 위해 좋지 않을 수도 있잖아.”

 

“나는 몰랐지. 여기서 그렇게 큰돈인지. 그리고 뮤지션도 먹고살아야지. 나는 일종의 공연비를 지불한 거야. 정말 좋은 공연을 봤다고 생각하니까. 공연을 보러 가면 일부러 그 돈 주고 표도 사서 가는데, 이토록 훌륭한 공연을 보고 그냥 올 수는 없었어.”

 

말다툼으로 길을 헤매다 결국 지나가던 쿠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숙소에 늦게 도착해서는 엄마와 새벽 두 시까지 논쟁을 하게 된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도시를 구경하고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헤밍웨이가 자주 갔던 보데기타 델 메디오 바의 분점이 산티아고에 있는 것을 보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여기 우리가 아바나에서 모히또 마셨던 헤밍웨이 모히토 바의 분점이야. 여기서 모히또 한잔하고 갈래?”

 

“그럴까?”

 

엄마와 나는 들어가서 모히또를 시켰다. 쿠바, 특히 산티아고의 모든 카페와 바가 그러듯 여기서도 쿠바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달달한 모히토를 마시면서 얼마간 연주를 듣던 우리는 감탄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쿠바에 와서 보지 못한 독특한 조합의 밴드가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세련되고 아름다운 음악을 보여주고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나온 손(son)의 음악에 현대적이고 정열적인 바이올린의 연주와 천재적인 맹인 기타리스트의 조화가 어우러져 각기 다른 연령대와 음악 색깔을 지닌 뮤지션들이 천상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엄마는 계속 감탄하며 거기 있는 누구보다도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엄마가 저렇게까지 행복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산티아고 Cristal Son 밴드 ⓒ 주형원 


유럽풍 외모에 세련된 패션을 겸비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는 현란한 퍼포먼스로 관객을 장악했고 맹인 기타리스트는 소울이 잔뜩 담긴 깊은 연주를 했으며이들보다  세대 위인 콘트라베이스와 가수도 여기에 성숙미를 보탰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이 이들의 단독 연주장이  것처럼 다들 집중해서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열렬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밴드 지인으로 보이는  백인 여성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신청곡 있어?”

 

내가 주저하지 않고 쿠바 80년대 대중가요 히트곡인 욜란다를 말하자, 그녀는 내게 웃으며 눈을 찡긋한 후 밴드에게 가서 전했다. 밴드는 예상치 못한 신청곡이었는지 조금 당황해하며 회의를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이 곡을 한 번도 같이 해본 적이 없구나.’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후 연주가 시작되었고 여태껏 기타를 치던 맹인 연주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의 노래가 시작되자 모두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그는 저기 어딘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먼 북소리처럼 아주 깊고도 넓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으며, 듣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파도처럼 깊은 파동을 치게 만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노래를 듣던 모든 이들은 강한 환호를 하였고, 박수는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노래를 부른 이를 찾아가서 고맙다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해 산티아고에 와서 처음 들었던  노래와  선물 같던 순간을   만에 다시  산티아고에서 또다시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엄마도 함께 말이다. 엄마는  밴드의 시디를 구입했고, 우리가 떠나려고 인사를 하자 밴드의 바이올리니스트는 말했다

 

“내일 저녁에 나는 카사 데 라 트로바 (casa de la trova)에서 연주할 예정인데, 그때 오지 않을래?”

 

우리는 안 그래도 내일 저녁 산티아고의 명물인 casa de trova를 갈 예정이었다.  우리는 행복한 마음으로 새벽에 바를 나서서 숙소로 향했다. 여기까지 였으면 정말 좋은 추억을 영원히 지니고 있었을 텐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엄마가 내 신청곡이 끝나고 내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엄마에게 비상용으로 따로 갖고 있으라고 준 돈 중 40달러를 밴드에게 팁으로 줬던 것이다. 바를 나오면서 계산을 하려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아까 준 비상금 있지? 계산하게 그거 줘." 


그러자 엄마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없는데."

"무슨 말이야 없다니? 아까 숙소에서 나가기 전에 줬잖아. 분명히 엄마가 넣는데"

"없어"


엄마의 표정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칫했다가는 돈을 못내서 여기서 남아 설거지할 수도 있겠다 싶어, 가방과 비상 지갑을 샅샅이 뒤진 후에야 간신히 계산을 하고 나올 정도의 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바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에게 그 돈을 팁으로 줬다고 실토를 한 것이다. 

 

“이미 시디를 산 걸로도 충분히 엄마가 좋은 시간을 보냈고 감사한다고 느꼈을 텐데, 여기 돈으로 그렇게 큰 팁을 주면 어떡해. 그렇게 되면 저 사람들은 앞으로 팁을 주는 사람들만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게 될 수도 있을 수도 있잖아.” 


산티아고 이자벨리카 카페 연주자 ⓒ 주형원


연주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서로 진정으로 즐겼던 이 마법 같던 순간이 엄마가 지불한 거액의(쿠바 현지 사정에 비해) 팁에 의해서 한순간에 깨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다시 와서 생각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느껴져서 그토록 엄마에게 그 새벽에 화를 냈던 것 같다. 엄마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좋은 마음으로 그 팁을 주었고, 그런 엄마의 마음도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먼저 이해하고 존중했어야 마땅함에도 말이다.  


사실 엄마는 길에 구걸하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으며, 항상 '저 사람들은 저게 직업이야'라며 지갑을 열었다. 나는 늘 '다음에 해야지' 하며 지나칠 때, 엄마는 지갑으로 먼저 손이 갔다. 늘 내가 보기에는 조금 많다 싶을 정도의 금액을 주었다. 그건 우리가 형편이 많이 어려웠을 때도, 조금 사정이 나아졌을 때도 늘 같았다. 


뮤지션도 먹고살아야 하는 것도 맞고, 팁으로 대부분 먹고사는 바에서 연주하는 밴드에게 팁을 주는 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의 좋은 의도가 잘못된 욕심을 낳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던 것 같다. 이건 엄마에게는 이번이 첫 쿠바 여행이었고 아직 며칠 지나지 않았으며, 나는 벌써 두 번째 쿠바 여행이고 이미 지난번 한 달 넘는 쿠바 전역 여행을 통해 같은 문제에 여러 번 봉착했었기에 갖는 다른 시각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니나 다를까 걱정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산티아고의 카사 데 라 트로바(casa de la trova) ⓒ 주형원


우리는 카사 데 라 트로바에 다음날 저녁에 갔고, 도착한 지 십 분쯤 지났을까 어제 연주를 했던 바이올리니스트가 나타나더니 우리 테이블로 와서 인사를 했다. 그는 빈 의자를 가리키며 ‘여기 앉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그가 연주 전에 잠깐 시간이 되나 보다 하며 앉으라고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그는 나에게 갑작스러운 질문을 했다.

 

“너 해변 좋아해?”

“응”

“그러면 내일같이 해변에 갈래?”

 

당황한 내가 말을 돌리자 조금 있더니 자신이 좋은 식당을 안다며 내일 같이 저녁을 먹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물론 중간에 내 나이를 물어보고는 20대 초반인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느꼈는지 순간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계속되는 그의 은근한 데이트 신청(?)에 뭔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 연주는 언제 해?”

 

그는 오늘은 사정이 생겨서 연주를 못하게 되었다면서, 이따 여기 공연이 끝나면 새벽에 근처 공원에 가서 엄마 만을 위한 특별 연주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산티아고 시 교향악단 정식 단원인데, 한 달에 10달러밖에 못 벌어. 연주는 거의 매일 하는데 말이야. 도저히 이 월급만으로 살 수는 없어서 매일 저녁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밴드와 공연을 해. 어제 너희가 봤던 그 밴드랑은 몇 달 전부터 같이 하기 시작했어. 보통은 얼마 벌지 못하는데, 어제는 너희 엄마 덕분에 큰돈을 벌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 말을 들으니 그가 왜 오늘 저녁에 여기서 연주를 한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는 애당초 여기서 연주를 할 예정이 아니었으며, 우리를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왔던 것이다. 엄마에게 빠르게 상황을 설명하자, 엄마 역시 당황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상처 주지 않으면서, 여기서 자연스레 그와 헤어질 수 있을까 하는 나름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고민 끝에 그에게 최대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 미안한데, 엄마가 오늘 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일찍 집에 들어가 쉬어야 할 거 같아.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보자. 고마웠어”

 

그는 내 말에 바로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한순간 먹구름이 끼었다. 우리가 뒷문으로 나가면서 그가 있는 방향으로 힐끗 쳐다보니 그 또한 떠나기 위해 바이올린을 챙기고 있는 게 보였다.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낙담이 교차하는 얼굴로 바이올린을 챙기고 있는 그를 보면서 엄마 또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엄마 역시 한 번도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나 재능 있는 한 젊은이가 시립 교항 악단의 정식 단원으로 연주하면서도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든 나라. 선의의 마음이 자칫 관계를 변질시킬 수 있는 나라. 이건 매력적이며 아름다운 쿠바의 또 다른 슬픈 단면이었다. 


산티아고 데 쿠바의 바닷가 ⓒ 주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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