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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26. 2019

08. 달라진 쿠바

쿠바에 온 지 일주일이 돼가자, 그제야 내가 오 년 전과 똑같다고 믿은 쿠바가 사실은 달라도 한참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어디서든 휴대폰을 들여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는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일상이지만, 오 년 전만 해도 쿠바인들에 이건 '별세계' 이야기였다.


가장 큰 충격은 공원이나 광장에서 무선 인터넷을 하느라 각자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쿠바인들이었다. 이 장소들은 쿠바에서는 굉장히 특별하다. 쿠바의 모든 도시에는 도시의 크기와 상관없이 도심 중앙에 공원과 광장이 있고, 이곳들은 종종 유명한 혁명가의 이름을 따고 있거나 동상을 지니고 있다. 공원에서는 벤치에 앉아 처음 본 사람들끼리도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눴으며, 광장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저녁 아홉 시쯤 흥겨운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집에서 나와 광장에 모여서 열정적으로 춤을 췄다.


축제에는 모두 다 참여할 수 있었다. 입장료도 없었다.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한 축제였다.


얼마 전부터 쿠바에 와이파이가 들어오고 공원과 광장이 와이파이가 되는 얼마 안 되는 장소가 되면서, 각 도시의 공원 및 광장에서는 쿠바인들이 앉아서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지하철, 거리, 카페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지만 쿠바, 그것도 쿠바의 만남의 장소이자 축제의 장소인 공원과 광장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을 볼 줄을 오 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 주형원


물론, 와이파이가 쿠바인들이 지불하기에는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라 광장에서 인터넷을 하는 이들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 관광객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광장에서 모두가 자신의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는 이 광경이 슬프게 느껴졌다. 문득 오 년 전에 라파엘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는 내 아이폰을 쳐다보다가 물어봤다.


"너희는 아무 데서나 다 인터넷을 할 수 있어?"

"응"


그는 그런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는 밖에서는 당연히 안 되고, 집에서 인터넷을 하려면 신청해야 하는데 너무 비싸. 우리는 한참 뒤처졌어."

"대신 우리는 바로 옆에 사는 사람들도 모르고 지내. 너는 모든 이웃들을 알고 서로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하면서 지내지만 우리는 그 반대야."


ⓒ 주형원


그는 내가 무슨 별천지 말을 하는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여기에는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지만, 나는 이 광장의 모습이 앞으로 쿠바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예감에 문득 슬퍼졌다. 달라진 건 무선 인터넷뿐만이 아니었다. 쿠바 대도시의 광장에는 예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아디다스, 나이키 같은 유명 국제 브랜드들의 매장이 들어서 있었고, 슈퍼마켓에서는 보란 듯이 코카콜라가 진열돼 있었다.


5년 전에는 쿠바 슈퍼에서 콜라를 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진짜 코카콜라가 없는 대신 콜라를 그린 그림이 거리 곳곳에서 보였는데 말이다. 지구 상에서 코카 콜라를 팔지 않는 국가는 단 두 나라밖에 없었는데, 쿠바가 그중 한 국가였다(다른 한 곳은 북한이다). 민박집에 돌아와 아주머니에게 내가 느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 이후 많이 변했지. 건물들도 페인트칠이나 공사로 새로 단장하고. 이런 변화가 좋은 게 아니야?”


“그렇게 믿으세요?”


“그렇게 믿어야지. 그렇게 믿는 게 좋지 않겠어?”


“이렇게 변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지. 나는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쿠바도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해”


세상이 변해가고 있어서 그렇다는 민박집 쿠바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대답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세상은 변한 지 이미 오래되었어요’


평생을 쿠바에서만 살았고, 다른 곳에 가본 적 없는 이 쿠바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은 변한 지 이미 아주 오래되었고, 쿠바만이 이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오랫동안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물론 그 때문에 치러야 하는 비싼 혁명의 대가가 있었지만, 그래서 모두들 그토록 쿠바를 사랑하는 거라고. 한 번 세상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 내려가는 순간, 다시 거슬러 올라오기는 불가능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가 너무 많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건 내 욕심일까?  


ⓒ 주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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