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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27. 2019

<기생충>을 본 프랑스 시부모님

'한국 황금종려상 수상! '


지난달 남편과 함께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프랑스에 있는 시아버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자마자 보낸 메시지였다. 지난주 주말에 시부모님이 집에 점심을 드시러 오셨다. 우리의 이번 한국 여행이 어떻냐고 물으시고는, 우리가 너무 좋았다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물었다.


"기생충 봤어?"

"네, 봤어요"

"한국에서?"

"두 번 봤어요. 한국에서도 보고 지난주에 파리에서도 보고"

"어땠어?"

"너무 잘 만들었던데요. 좋았어요"

"그렇지?"


이렇게 점심 식사 대화의 절반은 <기생충> 영화 이야기로 이어졌다. 두 분이 이토록 좋았다는 사실에 나까지 괜히 뿌듯해졌다. 사실 나의 프랑스 시부모님에게 이 영화는 여러모로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일단 한국에서 세 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넘치는 사랑으로 너무도 훌륭하게 키우셨고, 시아버님은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은퇴 전에는 권위 있는 프랑스 문화 잡지의 편집장이자, 영화 비평가로 매년 칸 영화제에 초대받아 가셨었다. 은퇴하셨어도 지금도 문화 분야 다큐멘터리 영화를 여러 편 만드시고 계시며, 이곳 문화 채널인 아르테에서 방영을 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들이 온 국가에서, 자신이 평생 몸담고 있던 분야의, 그것도 몇십 년 동안 매년 수많은 영화인들을 인터뷰하고 또 그들과 교류하였던 영화제에서 최고 상을 탔으니 흥분하실 만도 하셨다. 시어머님도 평소와 다르게 들떠서 말했다.


"영화를 보는데 우리가 잘 아는 세계인 것 같아 친근했어. 우리는 너랑 너희 가족을 통해 한국어를 자주 들을 수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배우들의 언어가 익숙한 멜로디처럼 들렸거든. 또 익숙한 표정이나 제스처도 있었고."


"장면 장면도 그렇고 배우들 연기도 너무 훌륭했어.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최고였어."


 "근대 한국에는 영화에 나오는 그런 반지하가 많아?"


"네, 반지하도 많고, 옥탑방도 많아요. 주거 문제가 심각하거든요."


"부자들도 영화에 나오는 그런 동네에 살아?"


시부모님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궁금했던 부분들을 한참 동안 물어보았다.




우리는 한국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에 돌아오기 전날 서울에서 <기생충>을 처음 봤다.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남편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오히려 꼭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했던 것은 남편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자막 하나 없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못 알아들으니 너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영화 보는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남편을 쳐다보니, 남편은 영화에 잔뜩 몰입해 있었다. 끝나서 남편이 얼마나 이해했나 궁금해서 줄거리를 물어보니, 아주 자세한 디테일들은 이해하지 못했어도 대강의 내용은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꼭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래도 내용을 다 이해하면 영화가 더 흥미로울 거라는 생각에, 파리에 다시 돌아온 그 주 주말에 <기생충>을 두 번째로 보았다. 이번에는 프랑스 자막이 들어간 버전이었다. 한국 영화를 해외에서 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가 있다. 문화마다 반응하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는 한국에서는 안 웃을 장면에 웃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극장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 장면들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기도 하다. 그건 <기생충>도 마찬가지였다.


"어땠어?"


나는 남편이 이번에는 모든 내용을 이해했으니, 훨씬 더 재밌게 봤겠지 기대하고 물어봤는데 대답이 의외였다.


"난 서울에서 본 게 더 좋았어"

"왜? 내용은 더 잘 이해했지 않아?"

"응 그렇긴 한데, 서울에서 본 게 왠지 더 와 닿았어"


대한민국이 모두 봉준호 감독님의 수상 소식과 <기생충>으로 한껏 달아올랐을 때 봤으니, 아무래도 그런 분위기도 작용했을 수 있다. 또 서울에서 영화를 봤을 때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에서 관람을 했으니 대입이 잘 되다가, 서울과는 너무도 다른 느낌의 파리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자 이질감이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런 남편과는 반대로, 아직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시부모님은 본인들에게 멀고도 가까운 한국을, 파리에서 이렇게 영화로 느낄 수 있어서 반가웠던 것이다. 마치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영화의 흥행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한국에서도 관객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면서? 여기서도 많이 보러 가고 있어."




늘 자신들의 아이들이 온 나라, 한국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보았고 신문에 조금만 기사라도 날 때면 링크를 보내주시고는 하는 분들이었다. 이분들이 입양했을 때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신들이 가슴으로 난 아이들이 태어난 국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보았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몇십 년의 시간 동안 한국 또한 이제는 프랑스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라로 성장하였다.


그것도 이미 뿌듯한데 거기에다 덤으로 자신이 평생을 몸담고 있었던 분야의 나름 최고의 상까지 받게 되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부모님을 보면서 이분들의 깊은 사랑이야말로 또 다른 성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내가 부러워할 만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고, 그 덕분에 메마르고 건조한 나와는 반대로 늘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은 사람을 낳지만, 사랑은 사랑을 낳았다.


시아버님이 물어봤다.

 

"그 영화에서 먹는 라면 있잖아. 짜파구리가 뭐야? 영화에서 먹는데 너무 맛있어 보이더라고. 뭐로 만드는 거야?"


"음... 짜파게티랑 너구리랑 섞어서 만드는 건데요"


아 참. 이분들이 짜파게티나 너구리를 어떻게 알 것인가. 나는 다시 고쳐서 말했다.


"서로 다른 맛의 라면을 섞어서 만드는 거예요. 저도 아직 한 번도 안 먹어 봤는데, 한 번 해 보려고요"


다음에는 한 번 짜파구리를 시도해서, 시부모님과 함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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