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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l 02. 2019

상처 받는 사람만 있고 주는 사람은 없는


"말로 잘 때려요."


농담인 것처럼 지나가듯 말했지만, 그녀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녀가 가고도 한참 그녀의 말은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의 말은 나에게 두 가지 면에서 충격이었다.


첫째는, 내가 말에 민감하고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 말을 할 때 나름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그 말을 나에게 한 그녀는 나를 포함한 회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늘 무시하는 발언으로 상처를 주는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도 안 나올 거 같던 그녀가. 모두에게 막말을 퍼부어서 회사에서 기피 대상 일호였던 그녀가. 나에게 말로 잘 때린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돌려보면, 그녀도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상사인 그녀의 일상적인 막말에 다른 직원들처럼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결심에, 더 세고(?) 모질게 말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남들한테는 좋게 말할 것도, 그녀에게는 가시만 골라 섞어서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름 ‘갑질’을 당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자, 정당한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뒤에서 아무리 눈물 흘리며 욕을 해도 정작 앞에서는 입도 뻥긋 못하는 동료들이 용기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녀 역시 내 말에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그녀가 몇 번이나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자고 나름 용기 내 제안했을 때, 늘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하면서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 연기를 하지 않는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단 한 번도 나의 부동의 거절에 그녀가 상처 입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남들이 어떻든 저는 신경 안 써요.” 단단하지 않은 이들을 비난하며, 자신의 멘탈은 갑옷을 입은 것처럼 말했다. 자신이 제일 중요하기에 남들의 말 따윈 상관없다는, 그녀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예전에 누군가 말했었다.


‘사랑받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는 사람은 없다고’


나에게 상처만 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에게도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게 과연 그녀뿐이었을까?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을까?




얼마 전에 본 법률 스님 즉문즉설에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말했다.


“상처 주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상처받는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아요.”


상처를 주려고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도 나에게 상처를 준지 모를 것이고,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도 나는 알지 못할 것이다. 물론 가까운 사이면 말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넘어갔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면서.


얼마 전에 누군가 하는 말에 크게 상처받은 적이 있었다. 나를 전혀 모르고 겪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심지어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 면전에 대고 나에 대해 한 말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인 거 같아요’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걸 들으며, 당시에는 굉장히 쿨한 척 ‘맞아요’라고 했었다. 상대의 말을 정말 인정해서라기보다는, 그런 말에 순간 상처받은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쪽에서는 오히려 나의 쏘 쿨(?)한 반응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사람은 다 그렇죠’라며 황급히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러자 나는 한 술 더 떠서 ‘아니에요. 안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라며 태연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웃고 헤어지고 나가서 한참을 울었다.


나 역시 연기력이 뛰어난 상처적 체질이었다. 생각했다. 그 어떤 이유가 되었든 간에 다른 이에게 상처되는 말은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심지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라고 해도. 혹은 누군가를 위해서라고 해도.


하지만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오늘도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알지 못하게 말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상처 받았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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