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희 Jan 30. 2023

설렘과 떨림은 걱정과 두려움 끝자락에 있다.

6년 만에 잡은 마이크, 행사 컴백했어요!

"혹시 시상식 행사의 진행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


'올 게 왔다......'라고 생각했다. 막연히 언젠가 오겠지 싶었는데...

기회는 이렇게 불현듯 찾아온다.


 



따져 보니 6년 만에 다시 잡은 마이크였다. 2018년 1월에 방송국 퇴사를 했고 같은 해 3월 로스쿨에 입학했다. 마지막 행사는 2017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행사 진행을 했던 당일, 나는 형식적인 멘트에도 꽤 자주 울컥했다.

 

말과 글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 부정적인 말은 꾹 삼킨다. 입 밖으로 꺼내면 현실이 되어버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불쑥불쑥 안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긴 하지만... 얼른 다른 생각을 하려 애쓴다.


 "다시 마이크를 잡는 그 순간이 나에게 영영 안 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기회가 올 거야. "


내가 초조해질 때면 신랑은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해 들려줬는데, 불안할 때 자신을 진정시키는 말을 3번 반복해서 해달라는 1타 스캔들의 최치열 쌤처럼 신랑의 말은 나의 불안을 가라앉혔다.



행사 진행 부탁을 처음 받았을 때,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울렁댔다. 핑곗거리는 마구마구 떠올랐다.


아직은 준비가 안되어서요.

시간이 빠듯해서요.

행사를 오래 쉬어서요. 오히려 제가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네요.

그날은 일정이 안되어서요.


두려움과 불안감, 부담감은 잘 해내고 싶은 나를 짓누르려 한다. 나는 이미 할 일이 정해져 있을 때에도 도망치고 싶은 내 마음을 수시로 마주한다.


도희야... 그냥 하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계속 들 때는 과거의 나를 들여본다. 예전에 모아둔 진행 대본들을 모조리 꺼내 보았다. 여기저기 날아갈 듯 쓰인 필기체의 글씨를 보니 행사장에서의 긴박함이 떠올랐다.


'맞아. 이때 이랬었지. 당황스러울만한 상황이었는데도 잘 넘어갔었어...'   

 





행사 진행자는 자신을 소개하며 "오늘 이러한 행사의 진행을 맡아 영광입니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다소 형식적인 멘트라고 생각했는데... 6년 만의 행사 컴백 무대에 선 나는 예전이라면 무심코 읽었을 그 단어 하나에도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나는 특히 행사들 중에서도 시상식을 유난히 좋아한다. 작품을 위해 고생하고 힘들었던 시간에 비해 상을 받는 순간은 찰나이겠지만 그럼에도 땀과 열정을 인정해 주는 그 반짝이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 뛰어난 영상 작품을 만드는 PD들일 수록 자신의 성과를 내세우는 일에 인색하기 마련인데, 부끄러워하면서도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니 진행하는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돈을 벌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을 줄 수 있다니. 시상식 행사는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이 절로 들 때가 많다.


행사를 끝내고 주최하신 분들께 인사를 다시 드렸는데, 매년 이즈음에는 아예 시간을 비워두라고 말씀해 주셔서 많이 웃었다. 덕분에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대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행사에 집중하느라 정작 행사장에서는 사진 한 장을 남기지 못한 게 아쉬워 대전으로 돌아오는 KTX에서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요즘은 '경력단절'이라는 표현 대신 '경력유보'라고 표현한다고 하던데... 그동안 쌓인 경험들이 비록 예전 한창일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내 몸과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라 굳게 믿는다. 예전만큼 잘할 수 없을 거라며 회피하고 싶은 본능을 겨우겨우 달래며 어렵게 다시 발걸음을 뗀 나를 응원하려 한다.


변호사로서의 업무를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비록 행사를 많이 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한국독립PD상 시상식처럼 의미 있는 행사들은 함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사람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건에 한번 더 눈길을 주고 현장의 생생함을 담기 위해 위험까지 무릅쓰는 독립PD 분들의 작품을 알아가고 그 노력과 열정, 땀을 함께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작가의 이전글 상처받은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