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토록 간절했던 방송, 왜 다시 내려놨을까?

선택의 순간은 늘 찾아온다

by 김도희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죠? ^^ 변호사 일을 내려놓고 강사로서의 삶을 준비한 게 2023년 6월이었는데 올해 5월 28일, <법률사무소 앵커>를 개업하고 변호사 일을 다시 시작했고요.


언제 다시 할 수 있을까 막막했던 방송은 2024년 3월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 넘게 진행하던 법률방송 <생생법률쇼> MC 자리를 지난달, 스스로 내려놨는데요.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지 혹시 궁금하실까요? 오늘은 마지막 방송이 있었던 그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7월 17일 제헌절, 마지막 방송하러 갔던 날, 쏟아졌던 폭우


지난달 17일은 제 인생 가장 따뜻한 제헌절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세종과 서울을 오가며 진행했던 법률방송 <생생법률쇼>의 마지막 방송일이었거든요. ^^


마지막 방송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분들이 뭉클했을 거라는 상상을 할 것 같은데요. 그러나 그날 아침에는 '시간 내 잘 도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밖에 없었답니다. 폭우가 마구 쏟아졌거든요. 오송역까지 가는데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평소처럼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면 더 초조했을 텐데요. 다행히 이 날은 남편이 오송역까지 데려다준 덕분에 무사히 수서역 가는 SRT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휴우~~~


법률방송 <생생법률쇼> 김도희 변호사 마지막 방송, 기미진 변호사님의 깜짝 멘트


막방도 평소와 다를 건 딱히 없었습니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려고 할 즈음, 갑자기 옆에 계신 기미진 변호사님께서 깜짝 멘트를 하시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웃음이 터져 혼났습니다. 생방송이기 때문에 시간을 잘 지켜 끝내야 하거든요. 정신을 꼭 붙잡고 잘 끝냈다고 생각할 즈음, 2차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꽃다발과 케이크를 들고 스튜디오로 들어오는 제작진을 발견한 것이죠. 결국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ㅎㅎㅎ


어쩌면 이러한 따뜻한 배웅을 자연스럽다고 여길지 모르겠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번쯤 봤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이죠.


1년 반 넘게 함께 했던 법률방송 <생생법률쇼> 제작진



하지만 저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요. 왜 그랬을까요?


2018년, 6년 넘게 일했던 TJB를 퇴사할 때, "수고했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2018년 TJB 퇴사와 너무 달랐던 이번 작별"


"김도희 씨, 소송할 거예요?" 그 당시 사장이란 분이 저에게 처음 건넨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 방송국을 위해 6년을 위해 일한 사람인데... 설마...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하겠지 싶었거든요.


(그 당시 이미 회사와 퇴직금 소송 중인 아나운서가 있었고, 또 다른 아나운서에게도 회사는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앞으로 닥칠 제 소송을 준비하겠다고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퇴사하는 날이었죠.)


싸늘하고 냉소적인 말투로 "그... 나이도 있는데 괜히 고생하지 말고... 좋은 남자 하나 자빠뜨려서 시집이나 가지?"라고 했던 말도 기억나네요. (아직도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화가 납니다 ㅎ) 상처뿐이었던 TJB 퇴사의 추억이 떠올라 더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뜻밖의 환대에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했던 내 모습


딱히 막방이라고 특별한 멘트를 준비해 가지 않았습니다. 평소와 똑같이 진행을 했고 '프로그램 안에서는 최대한 티를 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중간에 빠지지만 이 프로그램은 연말까지 이어지니까요.

그런데, 뜻밖의 환대를 받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색하고 낯설더라고요. 어쩔 줄 몰라하는 제 모습, 다시 봐도 부끄럽네요. ㅎㅎㅎ 함께 방송을 만들어간다는 것. 팀워크란 게 바로 이런 모습이었는데... 이래서 내가 방송을 참 좋아했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살짝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과 세종을 총 107번 오갔습니다. 무더위에 지칠 때도 있었고 맹추위에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폭우나 폭설에 기차가 연착될까 봐 마음 졸인 날도 꽤 있었고요. 그래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즐겁게 방송했던 것 같습니다. ^^ 방송을 내려놓을 때도 가장 아쉬운 건 좋은 사람들을 계속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TJB를 상대로 퇴직금 소송을 할 때, 저를 가장 망설이게 했던 생각은 '다시는 방송을 하지 못하면 어쩌지?' 였는데요. 법률방송은 그러한 저를 처음 품어준 곳이라 더 애틋하답니다.


이쯤 되면 그렇게 간절했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던 방송을 왜 스스로 내려놓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건강 이슈가 있었습니다. 개업을 한 지 얼마 안 돼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는 소식(임신)에 무척 기뻐했는데요.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조기유산을 하게 돼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6월 말, 몸이 너무 아파 방송을 못 가는 일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같이 진행하는 지원 MC가 저 대신 고생을 많이 해주었어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법률사무소 앵커>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개업 초기인데,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방송을 하면서 사무실 일을 보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남편과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그러한 일정들이 자꾸 밀리더라고요. 그래서일까요? 저희 사무실은 아직 간판이 없고 시트디자인도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찾아오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한데요.


한 달의 절반을 서울에 있다 보니 자잘하게 결정해야 할 일들의 진행이 더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심이 필요했는데요. 건강 이슈까지 터지면서 선택의 시간을 당기게 되었습니다.


밝고 씩씩한 긍정 에너지로 나를 미소 짓게 했던, 보민 PD님


엉뚱하고 귀여운 매력의 수임 작가님
많은 말을 나누진 못했지만 막방을 축하해 주러 와 주셔서 감동했던 정원님
생생법률쇼 제작진이 준비해 주신 케이크와 꽃다발을 안고 오송역으로 돌아가는 길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이미 개업을 한 5월 말부터 답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걸 다 쥘 수는 없잖아요.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시 내려놔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언젠가는 해야 할 결정이었습니다.


정말 나에게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건 뭐지? 스스로에게 틈날 때마다 물어봤습니다.

방송을 위해 일주일에 2~3번은 왔던 오송역, 이제 당분간은 덜 찾아갈 듯?


저희(저와 남편)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 그 누군가의 곁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법률사무소 앵커>에 더 집중하기로 한 건데요.


그럼에도 방송은 여전히 저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고 법이라는 복잡하고 낯선 언어를 보다 쉽게 전달해 드리는 시간은 정말 보람되고 뿌듯한 일이었거든요. 방송으로 전하고 싶었던 그 마음을 앞으로는 저희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한분 한분께 직접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생각처럼 실천으로 옮기는 게 어렵네요. 이제 막 시작한 법률사무소 앵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주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그렇듯이 다시 또 새로운 시작인데요.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신다면 더없이 든든할 것 같습니다. ^^/


법률사무소 앵커 사무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신으로 만들어볼게요, 김토끼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