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레이저 시술, 아직도 회색지대인가: 수사·판례 흐름으로 본 리스크
2022 대법원 전원합의체(초음파) 이후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범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허용·금지 사례(EEG·골밀도·보톡스·리도카인·레이저)로 정리합니다.
작성일자 : 2025년 1월, 이후 업데이트 예정
의료법 제27조 제1항 본문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하여,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료행위란 “의학적 전문지식에 기반하여 질병을 예방·진단·치료하거나, 의료인이 아니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한편, 한국 의료법은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엄격히 구분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의료행위가 각 면허에 포함되는지는 명확하게 열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때문에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면허 외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많은 분쟁이 있어 왔습니다. 판례의 입장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는데, 특히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기점으로 큰 전환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과거에는 한의사가 사용하는 의료기기의 학문적 원리가 한의학이 아닌 양의학에 기반하거나, 해당 기기 사용이 한의학 교육에 포함되지 않은 경우 면허 범위를 일탈한 것으로 보고 유죄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2014년 대법원은 한의사가 미용 목적의 IPL 레이저를 이용해 피부질환을 치료한 행위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고 처벌하였습니다. 2016년에도 카복시(Carboxy) 시술을 시행한 한의사를 면허 범위 위반으로 판결하여, 현대식 시술은 한의사의 면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이 시기 판례들은 “한의학적 이론과 무관한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은 곧 면허 범위 위반”이라는 논리를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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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6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치과의사가 안면 주름 제거를 위해 보톡스 주사를 놓은 사건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습니다. 치과의사는 면허상 치과 영역 치료만 가능하나, 해당 판결은 “눈가 주름 보톡스 시술이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아 기존 잣대를 완화했습니다(대법원 2016. 07. 21. 선고 2013도850 판결). 이 판결은 의료인 면허범위 해석에 있어 경직된 직역 구분보다는, 해당 행위의 위험성 및 사회통념상 용인 여부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의사 의료기기 문제에도 이 취지가 이어져, 이후 판례 변화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보조진단수단으로 사용한 사건에서 무죄 취지로 판결하며,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판결입니다(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16도21314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에서 대법원 다수의견은 “관련 법령에 한의사 사용을 금지한 규정이 없고, 해당 기기 사용이 보건위생상 위해를 초래하지 않으며, 그것이 한의학 원리에 비추어 명백히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면허 외 의료행위로 보지 않아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기기의 안전성, 한의학적 응용 가능성, 법령상 금지 여부 등을 종합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새 기준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 판결로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활용은 합법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한의학적 진단 보조수단으로 쓰는 초음파 영상 촬영은 면허 범위 내 행위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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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대법원은 분명히 “이번 판결이 한의사가 침습 정도를 불문하고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강조하여, 모든 의료기기를 전면 허용하는 것은 아님을 못박았습니다. 이후 판례들도 이 기준을 따라 변화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대법원이 한의사의 뇌파계(EEG) 진단기기 사용도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고, 2025년 1월에는 엑스레이 방식 골밀도 측정기 사용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와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의 합법 범위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의사가 어떤 시술까지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령 해석상 공백이 커, 판례와 행정해석을 통해 범위가 정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행정해석(유권해석)은 대체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 왔으며, 판례 또한 전통적인 한의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시술에 대해서는 위법하다는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아래에 주요 시술별로 판례 결과와 행정해석의 입장을 정리합니다.
(1) 양약 주사 및 전문의약품 투여: 한의사가 양방의약품(서양의학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은 면허 범위를 일탈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툴리눔 톡신(보톡스) 주사는 미용 목적이든 치료 목적이든 한의사에게 허용되지 않는 시술입니다. 보건복지부도 “한의사의 보톡스 시술은 면허 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로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공식 유권해석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소마취제(리도카인 등)나 스테로이드 등의 양약 주입도 마찬가지로 금지됩니다. 최근 한의사가 통증치료를 위해 리도카인 주사액을 한약재 주입액(봉침액)과 혼합하여 환자에게 주사한 사건에서도 법원은 “리도카인의 약리 작용 및 부작용 등을 고려할 때 한의학의 보조수단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의료법 위반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이처럼 양방 전문의약품을 환자에게 투여하거나 주입하는 행위는 판례와 행정해석 모두 한의사 면허 범위를 벗어난 불법 의료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2) 양방 의약품 처방 및 조제: 한의사는 한약 처방권만 있을 뿐, 양약에 대한 처방권과 조제권은 없습니다. 예컨대 탈모 치료제(모발약)나 발기부전 치료제 등 일반 의사가 처방하는 전문의약품을 한의사가 처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2017년 서울중앙지방법원도 “한의사에겐 전문의약품을 처방·조제할 권한이 없다”고 판시하여, 한의사가 환자에게 양약을 처방하는 행위는 의료법 위반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보건복지부 역시 한의사의 양약 처방은 면허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일부 한의원이 환자 요구로 탈모약 등을 비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사례가 있어 논란이 있습니다. 어찌됐든 법해석상 한의사는 한약 이외의 의약품을 환자에게 처방하거나 투약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기면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3) 초음파, 뇌파계, X-ray 골밀도 측정기: 앞서 언급한 초음파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한의사가 뇌파계(EEG)를 활용한 사건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2023년경 한 한의사가 뇌파 검사지 등을 이용해 치매나 파킨슨병 진단보조에 활용한 행위에 대해 재판이 이루어졌는데,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서 마련된 기준을 적용해 이 역시 면허 위반이 아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대한치매학회 등 의학단체는 “대법원의 한의사 뇌파계 무죄 판결은 어처구니없다”며 공식 성명을 낼 정도로 반발했지만, 사법부는 비침습적 진단기기의 보조적 사용이라는 맥락에서 한의사의 EEG 활용을 처벌하지 않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2011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던 X-선 골밀도측정기 사용도, 전원합의체 이후 재조명되어 판례가 변경되었습니다. 2006~2018년경 한의원이 휴대용 X-ray 골밀도측정기로 환자들의 골밀도를 검사한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2023년 9월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무면허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어진 2심(수원지방법원 2025.1.17. 선고)에서도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무죄판결을 유지하였는데, 재판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새로운 판단기준에 근거하여 동일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한의사의 X-ray 활용 골밀도 검사 무죄” 판례가 사실상 확정되었습니다.
관련 행정소송에서도 유사한 취지의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4) X-ray 영상촬영장치, CT/MRI, 각종 물리치료기기 : 아직 이들에 대한 판례는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았으나, 한의계 일각에서는 “전원합의체 판결 논리에 따르면 방사선 안전관리 문제만 해결된다면 한의사도 X-ray 영상을 진단 보조에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5년 10월 국회에 한의사를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에 포함시켜 X-ray 사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전원합의체 이후 법원 판단이 바뀌자 입법으로 혼선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해당 법안은 의료계와 한의계의 이해충돌로 논쟁 중이며, 쉽게 통과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한의사가 저선량 X-ray 장치를 구매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보건복지부 질의응답 - "금지하지는 않지만 안전관리책임자를 선임할 수 있는 의료기관 종류에 한의원은 포함되지 않으므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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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용시술 (필러·실리프팅 등): 보톡스와 유사하게 필러 주입, 실 리프팅(녹는 실 등을 이용한 주름개선) 등의 미용시술도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넘는다고 보아 금지된다는 것이 전반적인 의견입니다. 이 또한 다툼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므로 앞으로 판례 등 추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6) 레이져 시술: 가장 논란이 많은 분야입니다. 아직까지 보건복지부가 공식적으로 한의사의 레이저나 고주파 미용시술을 정식 의료행위로 인정한 사실은 없습니다. 다만, 한의사가 하는 각종 피부 레이져 시술에 대해서 형사 고발이 이루어지더라도, 수사기관은 이를 무혐의로 종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2022년 이후 변경된 판례의 태도를 고려하여 무리하게 기소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많은 의료기기 업체들이 한의사에게 기기를 판매하지 않는 현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판매 거부 관행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일찍이 양방 의사단체(의사협회 등)가 한의사의 현대기기 사용을 막기 위해 업체들에 대한 압력을 행사해왔고, 회사들도 주 고객층인 양의사들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한의계와의 거래를 꺼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조직적인 거래 거부 행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7) 약침술: 한약을 주입하는 주사요법(약침술) 역시 한의학 고유의 치료법으로 인정되어 널리 행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한방 약침이라도 부작용 예방 조치를 소홀히 하면 문제될 수 있습니다. 실제 ‘봉침’(벌독 약침) 시술 부작용으로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법원은 한의사에게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 및 알레르기 반응 테스트를 다하지 않은 과실을 물어 배상 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는 시술 범위 자체의 위법성이라기보다 시술 과정의 과실에 따른 책임 문제입니다. 요컨대, 한의사에게 허용된 시술은 한의학 교육과 임상에서 인정된 범위에 한하며, 양방 의학에 속하는 약물·시술은 면허 범위를 벗어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8) 검체를 채취하여 임상검사를 보내는 행위: 한의학은 전통적으로 맥진, 관찰 등으로 진단하지만, 현대 환자들은 혈액검사나 영상검사 등 객관적 자료에 기반한 진단을 원하기도 합니다. 한의사들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환자의 혈액검사나 소변검사를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과거 보건복지부는 “한의원에서는 혈액검사, 소변검사를 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놓은 적도 있으나, 현재는 한의사가 환자 진료에 필요하다면 검체를 채취하여 임상검사를 의뢰하는 행위 자체는 허용된 것으로 보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한의사가 직접 혈액을 채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나뉘는데, 이는 채혈이 침습행위이므로 한의사 면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과, 한의학적 진료 보조를 위한 최소한의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 대립합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금지 규정은 없어 일부 한의원에서 간단한 채혈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9) 의료기사 및 전문인력 활용: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면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의 전문인력 도움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행 의료기사법상 한의사는 의료기사를 지도·고용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의료기사법 제1조의2 1호: . “의료기사”란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 진료나 의화학적(醫化學的) 검사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예컨대 한의원이 대법원 판례 취지에 따라 엑스레이 장치를 두고 싶어도 방사선사를 고용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의사의 현대기기 활용이 늘어난다면, 한의의료기관에서도 방사선사 등 기술인력을 합법적으로 채용하거나 지휘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10) 당직의료인 제도: 의료법 제41조 및 동 시행령·시행규칙은 병원급 의료기관에 대하여 일정 인원의 당직의료인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요양병원이나 한방병원의 경우 당직의료인 자격에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가 포함되어 있어, 세 종류 면허 중 어느 하나를 가진 사람이면 당직을 설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규정으로 인해 야간 당직을 한의사로 충원하는 관행이 일부 병원에서 발생하고 있으나, 정작 응급 상황 발생 시 해당 한의사는 서양의학적 처치나 약물 처방을 직접 수행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보건복지부도 “현행법상 한의사가 당직을 설 수는 있으나, 면허 이외의 양방 처치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바 있습니다. 결국 법 규정상으로는 당직의 인원 수 요건만 충족될 뿐, 한의사 당직 시 실제 환자에 대한 응급처치는 한계가 있는 상황입니다.
예컨대 한의사가 한약제제가 아닌 양방의약품(예: 해열진통제, 주사제 등)을 환자에게 처치하는 행위는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로 간주되므로, 양방 의사의 직접적인 처방이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판례가 나올 때마다 업데이트 예정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시술 범위에 관한 문제는 법원 판례를 통해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쟁점입니다. 판례들은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시대의 변화에 맞게 탄력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면허 이원화 원칙과 환자안전이라는 가치 사이에서 신중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등 행정당국도 일률적 기준보다는 신중한 개별 판단을 강조하고 있어, 당분간은 주요 사례들이 나올 때마다 법원의 판단과 그에 따른 정책 대응을 지켜보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법률가나 의료인이라면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새로운 판례나 지침이 나오면 그에 맞춰 실무를 조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