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형 처벌의 가능성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을 가진 이에게 일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을 묻는 질문들 중에 다수의 답변이 바로 절망적인 상황을 가진 환자나 의뢰인에게 사실을 전달할 때라고 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들려주어도 부족할 판에 크게 낙담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기분이 좋을 수가 없을 겁니다. 특히 그 이야기가 당신이 압도적인 가능성으로 ‘사망’하거나 ‘구속’당할 것이라는 내용이라면 말입니다. 순식간에 절망감에 휩싸이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유쾌한 기분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차마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지만 불가피하게 전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서글플 뿐입니다.
희망전도사가 아닌 의사와 변호사라면 객관적인 상황을 당사자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이나 과도한 배려로 있는 사실을 없다고 하거나 없는 사실을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사자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선택은 당사자의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정확한 사실을 안내해주고 이러한 방법들이 남아 있으니 결정하라는 선택지를 제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행유예기간 중 음주무면허운전 등을 저지른 분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는 사후적 경합범과 같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다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기에 지난 사건보다도 오히려 선처에 해당하는 벌금형의 처벌을 거꾸로 받아야만 구속을 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설사 집행유예 기간을 도과시키더라도 거의 대다수가 징역형의 실형 선고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고 절망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거의 전부에 가까운 사람이 ‘구속’을 당하는 것은 물론 ‘구속수사’까지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집행유예기간 중 음주무면허운전 등과 같은 악질적인 잘못을 저지른 자가 무슨 선처가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필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동안 수차례 잘못을 저질러서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최후의 선처를 받았음에도 단기간 내에 다시 잘못을 저지른 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일벌백계(一罰百戒)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한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개인사를 엿보다 보면 가끔 생각이 바뀔 때도 있습니다.
가령 사람을 해한 자를 엄히 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의 부모와 자녀를 해한 자에게 복수를 한 것이라면 일말의 동정 어린 감정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사적 복수를 하는 일은 결코 허용할 수는 없지만 형벌 수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범행 경위가 다소 참작할 사정인 것은 맞습니다.
물건을 훔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습관적으로 물건을 훔친 자라면 당연히 엄벌에 처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가 큰 질환을 앓고 있어 생계활동을 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었고 집에 굶주린 아이가 있어서 식료품을 계속하여 훔치는 선택을 하였다면 용서할 수는 없어도 엄벌에 처하는 일에는 고민에 빠질 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최근 시대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당연히 구속시켜도 부족할 집행유예기간 중 음주무면허운전 처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행유예기간 중 음주무면허운전을 한 사실은 맞지만 알고 보니 술을 마시고 있던 가장이 아이가 갑작스럽게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자신의 차량으로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다가 적발당한 경우라고 합시다. 혹은 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주차된 차량을 이동시켜달라는 이웃의 연락을 받고 운전을 할 수 있는 자를 금방 부를 테니 잠시 기다려주길 간청하였으나 성화를 이기지 못하여 주차장에서 몇 센티에 불과한 거리를 운전한 경우라고 합시다.
정말 이유를 불문하고 집행유예기간 중 음주무면허운전은 당연히 구속을 시켜야 할 최악의 행동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나 잠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구속이라는 것은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회적 사형선고와 다를 바가 없는데 일률적으로 무조건 징역형의 실형 선고를 하는 것이 정말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의문’을 변호사가 법률적인 논리로 다듬어 재판부에 제시하고 유리한 대답을 이끌어 낸다면 구속을 면하는 결과도 나올 수가 있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간혹 집행유예기간 중 음주무면허운전이 구속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벌금형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경우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물론 그 수는 매년 극히 희박한 수준에 그치지만 믿기 힘든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법무법인 세웅이 올해 상반기에만 누범이나 집행유예가 얽혀 문제가 발생한 사건을 11건이나 구속을 면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비결이 이러한 접근방식으로 법원을 설득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벌이 불가피한 집행유예기간 중 음주무면허운전이 구속을 피할 수 있도록 벌금형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최선의 노력은 판사의 혜안을 가리기 위한 거짓말이 아닙니다. 정말 진정성 있는 반성의 모습과 죄질을 희석시키는 여러 노력들이 판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유일한 비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요행과 쉬운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 헛된 이야기에 현혹당하시거나 가벼운 노력만으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시기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