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
유리컵의 이가 빠졌다. 설거지를 쌓아 두다가 깨진 것인지 헹궈낸 유리컵을 건조대에 올리다가 깨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젖은 식기들이 까드득 소리를 내며 부딪힐 때는 소름이 돋는다. 그러니 섬세함이 필요하다. 식기를 조심스레 겹치면 도리어 듣기 좋은 소리가 난다. 좁은 건조대 위로 어디까지 식기를 쌓을 수 있을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언제나 균형이란 아름답다.
꽤 두꺼운 유리였다. 식탁에 내려놓는 느낌이 단단했다. 몇 달 새에 흠집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늘 손이 닿는 물건은 가늠보다 연약하다. 자신이 모르는 새에 어딘가 부서져 있기 마련이다. 되도록 설거지를 쌓아 두지 않기로 했다. 부지런히 사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든다.
종종 유튜브에는 한 시간이 넘는 콘텐츠들이 있다. 그때마다 댓글을 열면 덕분에 설거지를 끝마쳤다는 농담이 보인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싱크대에서 빈 그릇 닦는 일을 못 견디는 모양이다. 실은 세상 모든 뒷정리가 그렇다. 지루하고 따분할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여서 설거지를 할 때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 두는 편이다. 정작 싱크대의 물소리와 식기를 긁는 수세미소리 때문에 라디오의 대화를 알아들은 적 없다.
애인과 나는 식사를 차리는 쪽과 먹은 뒤 정리하는 쪽을 번갈아 가며 맡는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뒷정리보다 어렵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그렇다. 난 재주가 좋지 못해서 너무 짜거나 단 음식을 내놓고 만다. 하지만 식사를 차리는 쪽이 뒷정리보다 즐거운 이유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음식이든 다른 무엇이든 없던 것을 만들고 그걸 다른 이와 나누는 일은 긴장되고 또한 재미있다. 반면에 창작 뒤의 흔적을 치우는 일은 고되고 심심하다. 정리는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집안일에 서툰 게 창피한지 모르던 시절에는 설거지를 한 번 할 때에도 요란했다. 특히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어서 주변이 온통 물바다였다. 나의 설거지를 지켜보던 선배는 싱크대 주변을 맨손으로 훑어내며 설거지에도 뒷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리에도 정리가 필요한 셈이었다. 가끔은 라디오를 끄고 설거지를 할 때가 있다. 비슷한 모양의 식기를 부드럽게 겹쳐 세우며 건조대의 빈 자리를 조금씩 채운다. 설거지를 마친 주방에는 고요가 흐른다. 싱크대의 가장자리에 고인 물을 마른 행주로 닦아낸다. 문득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낀다. 새삼 추스르는 일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던 건 오랫동안 일한 자원활동단체를 정리하던 날이었다.
발달장애아동과 자원교사가 짝을 지어 일주일에 한 번씩 놀이활동을 하는 단체였다. 나는 그곳의 은평지역 실무자였다. 인력이 적은 탓에 어린 나이였던 내가 실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나 자원교사가 모두 적어서 운영이 매우 어려웠다. 다행히 매해 사람들이 늘었다. 4년이 지나던 때에 나는 입대했고 후임자에게 실무를 인수인계했다. 전역까지 6개월이 남았을 무렵에 당시 실무자가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구나 하루를 자고 오는 캠핑 프로그램 중에 연락이 끊긴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별 일 아닐 수 있으나 발달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 입장에서는 큰 사고였다. 실무자를 대리할 인력은 나오지 않았다. 부대에 있던 나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상황을 잘 추스려달라고 전했다.
이윽고 몇 개월 간 활동이 멈추었다. 봄이 되는 해에 다시 문을 열 건지 의견을 물었다. 함께 활동하던 다른 이들은 미안하다는 답을 줬다. 모두 지쳐 있었다. 나도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우리가 할 일은 상처 입은 이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정중히 사과하는 일이었다. 먼저 부모들에게 전화했고, 도움을 줬던 많은 이들에게 전화했다. 통화연결음을 들을 때마다 입이 말랐다. 정작 무책임한 이는 다른 사람인데 어째서 우리가 뒷수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여러 번 원망했다. 다행히 지금은 다른 마음이다. 수 년이 지나서 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뒷수습을 함께 했던 사람들끼리 모여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던 그이에 대해서는 다들 마음이 깨끗했다. 그리고 하나 같이 그때의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며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남은 짐들을 털어주었다.
물론 지워지지 않는 감정도 있다. 여전히 별안간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는 날이 있다.
설거지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하고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이야기는 워크캠프의 기억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필리핀의 타클로반이라는 섬이었다. 그 섬에서도 외곽에는 판자집이 모인 낙후지역이 있었다. 그곳에서 2주를 머무르며 학교를 짓는 일을 돕기로 했다. 우리가 머무르는 숙소는 늪지 위에 세워진 오두막이었다. 상하수도는 물론이고 전기도 없었다. 깨끗한 물은 일주일에 한 번씩 시내에서 배달이 왔다. 물이 귀하기 때문에 설거지는 보통 빗물을 받아다가 썼다. 빗물마저도 귀했다.
더운 나라에서는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기름에 조리하는 레시피가 많다고 했다. 주로 필리핀의 가정식을 먹게 되었는데 대부분 튀기거나 졸인 음식들이었다. 설거지가 무척 고생이었다. 적은 물로 기름기를 씻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을 기름이 잔뜩 낀 식기를 비벼봤자 기름이 때처럼 벗겨지진 않았다. 난처하지만 방법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기름이 그대로 남은 식기를 그릇장에 집어넣었다. 막상 2주 동안 식기가 더럽다고 느낀 적은 없다. 기름이 남은 식기라는 게 금기는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때가 탄 식기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구태여 설거지에 기름을 남기지 않는다. 깨끗할수록 좋은 걸까. 여러 번 되물어보아도 역시 깨끗한 게 좋은 법이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깨끗하게 끝이 나진 않는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설거지는 쌓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그렇지만 잔뜩 모인 식기를 씻어내고 건조대 위에 하나씩 쌓아 올릴 때의 평화를 나는 좋아한다. 사람은 원래 이 모양인 것이다. 밥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있는 이가 없듯이 우리는 단지 설거지를 해야 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