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
일부러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술자리에서 친한 형이 한 말이었다. 그때 형은 결혼한지 1년이 되지 않은 신혼이었다. 형은 신혼부부에게 유리한 대출상품을 아껴 두기 위해 혼인신고를 미룬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도 할 수 있구나. 어린 마음에는 결혼식을 올리면 당연히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을 잡으면 무조건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처럼. 물론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갑작스레 나는 환상이 깨지는 느낌이었다. 대출상품이라는 말이 풍기는 무게감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모든 게 돈 문제구나. 막연하게 수 년 뒤 내가 결혼을 하게 될 때에도 혼인신고를 곧바로 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사람들이 언제쯤 결혼하느냐는 질문을 먼저 한다.
아무래도 애인과 같이 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동거를 하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어떤 이유일까. 결혼을 해서 참 다행이라는 이야기보다는 불평불만을 더 많이 듣는 편이다. 물론 열에 아홉은 농담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궁금할 때가 있다. 정말 결혼을 하면 상상과 많이 다를까. 바짝 몇 년의 신혼이 끝나면 웬수여도 정 때문에 산다는 말이 사실일까.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결혼은 좋은 것이다. 서서히 그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그러므로 결혼을 축하하는 문화가 생긴 게 아닐까. 나는 사랑하는 선배의 결혼식을 도운 적이 두 번 있다. 한 선배의 결혼식에서는 축시를 낭독했고 다른 선배의 결혼식에서는 피로연을 기획했다. 두 번 모두 가슴이 떨렸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게 진심으로 기뻤다.
축시를 낭독하던 날에는 우스운 일이 있었다. 선배는 자원활동단체에서 만난 형이었다. 그래서 선배의 결혼식에는 함께 자원봉사를 하던 단원들이 다같이 참석하기로 약속했다. 다만 결혼식의 날짜가 문제였다. 우리가 활동하던 단체는 발달장애아동과 놀이활동을 하는 곳이었고 선배의 결혼식은 하필 아이들과 일박이일로 캠프를 다녀오는 날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에 선배는 식을 올렸다. 조금 서두르면 식장에 늦지 않았다. 다만 차림새가 엉망이었다. 우리는 계곡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했다. 피부는 까맣게 탄 채로 알록달록한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가야 했다. 더구나 나는 단상 앞에서 축시를 읽어야 했다.
선배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나는 캠핑장에서 밤을 새며 시를 썼다. 막상 하객들은 우리들을 유쾌하게 받아주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시를 읽었다.
다른 선배의 결혼식에서도 나는 시를 낭독했다. 나와 친구들이 준비한 피로연장이었다. 선배는 내게 몇 가지 요청사항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드레스 코드를 빨간색으로 맞추어 달라는 것이었다. 선배는 유독 빨간색을 좋아했다. 나는 전시소품으로 갖고 있던 무당 옷을 입고 갔는데 다행히도 선배는 웃어넘겼다. 내 옷은 관심을 끌어서 그날밤 여러 명의 손길을 탔다.
피로연에는 식순이 많았고 누구는 노래를, 누구는 편지를 읽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 나는 원고지에 쓴 축시를 꺼내 읽었다. 여러 번 고쳐 쓴 시였다. 선배는 무서운 사람이었고 결혼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괜히 낯간지러운 시를 썼다가는 인상을 찌푸릴 것 같았다. 주의하며 쓴 글귀이지만 실은 지금 꺼내어보면 그 마저도 어깨가 움츠러든다. 반팔티를 입고 낭독했던 축시도 마찬가지이다. 시를 쓰며 나는 오래도록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랑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중요한 그 무엇이란, 사랑이 아닌 무엇이라기보다는 사랑보다 큰 무엇이다. 두 명의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일은 너무 크고 중요한 일이어서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충분히 담기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간 결혼식에서는 존경하는 목사님의 축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분께서는 결혼하는 두 사람에게 세 가지 당부를 두고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그 중 하나는 반드시 개인의 생활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인으로서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내는 이가 부부가 되어서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서로의 개인적인 시간을 존중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며칠 뒤 나는 이 이야기를 지인들과 나누려다가 문득 결혼하지 않은 이라고 해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삶이 꼭 혼자 사는 삶을 뜻하진 않는다. 혼자 사는 이어도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도리어 개인적인 삶이란 혼자가 아닌 둘이 되었을 때 비로소 눈에 드러난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일은 여러 갈등을 부르지만 기실 그 갈등이란 개인으로서의 나의 범주를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와 결혼한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못해도 결혼한 삶은 와인 한 병을 딸 때 그걸 남길 걱정은 덜하지 않을까. 원래 걱정은 나눌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