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레몬: 스물 넷, IMF의 겨울

1997년, 대학에 입학하던 해 겨울.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를 맞았습니다.
기업들이 무너지고, 거리엔 구조조정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제게는 아직 대학생활이 3년 정도 남아 있었다는 것.
세상의 거센 풍랑 속에서도 저는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조금은 단절된 채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여름.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들썩이던 그해,
저는 졸업장을 손에 쥐고 세상 속으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이죠.


하지만 IMF 이후 5년이 흘렀음에도,
취업난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언론은 “IMF 이후 청년 실업률이 8~16%대를 기록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전무후무했던 취업 한파는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했고, ‘백수’라는 단어가 일상의 언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수많은 취업준비생 중 한 명이 되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구인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이력서를 냈습니다.

장녀였던 탓에 ‘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적성이나 소질 같은 건 사치였습니다.
공고가 올라오는 대로 지원서를 넣었지만
결과는 백전백패.
서류 탈락, 면접 탈락이 반복되며 자신감은 점점 무너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추천으로 S기업 공채 면접 기회를 얻었습니다.
‘역술인이 면접관으로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던 바로 그 회사였죠.
이 면접만 통과하면, 이력서나 필기시험 평가 없이 바로 입사가 확정된다는 말에
저는 새로 산 정장을 입고 긴장된 마음으로 면접장에 들어섰습니다.
몇몇 아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모두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이번엔 꼭 붙어야 한다”

면접이 시작되고 5분쯤 지났을 때,
면접관 중 한 명이 물었습니다.


“구조조정 대상자로 통보받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잠시 생각한 끝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유학을 가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면접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면접은 곧 종료되었고, 결과는 예상대로 불합격.



며칠 뒤,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에게 들었습니다.

“그 질문엔 ‘성과로 극복하겠다’거나
‘일하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하겠습니다’는 식으로 답했어야 해.
‘유학 가겠다’는 건 임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야.”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회사가 듣고 싶어 하는 ‘정답’을 몰랐고

더 나아가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 후로도 수십 번의 불합격 통보를 받으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회의감이 깊어졌습니다.

진즉에 유학을 준비해온 친구들은
이미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학을 선택지로 두지 않았기에
갑자기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 무렵, 낯익은 얼굴들이 TV 화면에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졸업한 동기, 선배들이 방송기자, PD로 모두들 자기 길을 찾아가고 있었죠.
그 사이에서 저는, 그저 ‘백수’였습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왜 언론사가 아니라 일반 기업에 지원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밥벌이를 해야합니다'라는 말을 꾹 참고 "전공이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라는 거짓말 같은 변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자신이 조금씩 작아졌습니다.






백여 건의 불합격 끝에
제가 얻은 첫 일자리는 KDI연구소의 단기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연수자료를 복사하고, 간식을 준비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한 달에 백만 정도를 받을 수 있었고, 집에서도 가까웠습니다.
그 6개월 동안은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은 편했습니다.
불합격 통보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곳에서 저는 우연히
훗날 제가 다니게 될 한국자산관리공사의 팀장 연수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복사기를 돌리고, 자료를 제본하고, 간식을 정리하며
그분들의 대화를 곁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인연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저는 한국자산관리공사 공채에 합격했습니다.
백여 통의 불합격 끝에 받은 한 장의 합격 통지서.
IMF 한파 속에서 시작된 제 구직 여정은
1년 6개월 만에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문을 넘는 순간, 또 다른 생존 경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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