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무대 위에서 얼어붙은 아이

외국어고 입학식 날, 나는 배우가 될 줄 알았다

무대 위에서 휘청거리는 열일곱에게.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었습니다.
반짝이는 학교 로고가 달린 교복을 입고, 고풍스러운 건물과 곳곳에 자리한 작은 숲과 나무, 오솔길이 이어진 학교로 들어서며 저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다는 기대만으로도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입학식은 밝은 조명으로 가득한 강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입학생들은 차례로 연단에 올라 교장, 교감, 담임선생님과 한 분 한 분 악수하며 인사를 했습니다.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는 동안, 저는 이상하게도 배우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 곧 나의 연극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제 순서가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교감선생님과 악수를 나누는 순간, 그분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공부 좀 열심히 해야겠다.”


그 말이 끝나자, 저는 무대 위 밝은 조명 아래에서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조금만 넉살이 있었다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웃으며 넘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운 좋게 턱걸이로 입학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받아 느낀 부끄러움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옆에 서 있던 처음 만난 같은 반 친구가 그 말을 들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학교에서 말을 아끼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무언가가 들킬까 봐,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닫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열일곱의 제가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습니다.




교감선생님의 말씀대로 고등학교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한 대가는 혹독했습니다.영어 재시험은 일상이었고, 소리와 억양조차 낯선 중국어에 이어 이해되지 않는 불어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마치 수십 번의 강펀치를 맞은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1997학년도 불수능까지 겹치며 고등학교 생활은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시간을 끝내 통과하긴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입학식 날 교감선생님의 말은 예언처럼 정확했지만, 그것이 제 전부를 규정하지는 못했습니다.저는 끝까지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학식 무대 위에서 얼어붙었던 저는 그렇게 침묵하는 아이가 되었고, 대신 오래 버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와 그날의 저를 떠올리며, 인생의 첫 무대에서 예기치 못한 강펀치를 맞고 휘청거리는 모든 열일곱에게 이 글을 빌려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날 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
갑자기 무대 위에서 얻어맞은 것 같았으니.

그 순간 가만히 버틴 건, 네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어려운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야.

열일곱의 네가 할 수 있었던 건, 그 정도면 충분해.


입학식 무대 위에서 시작된 그 연극은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성장의 서막이었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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