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레몬: 30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찾아오다

애꿎은 삶의 데자뷔: 아이의 영재원 도전


저는 개업 변호사로서 나름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이 늘 그렇듯이 일상의 평온함은 종종 누군가 던진 말한마디로 흔들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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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가 교육청 영재원 시험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였습니다. 아이는 호기심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후 저는 마치 30년 전 겨울로 되돌아간 듯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영재원이 어떤 곳인지 아시지요? 〇〇는 지원해도 어려울 텐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30년 만에, 이번에는 제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안 돼'라는 종류의 말을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삶은 참 애꿎습니다. 인생의 레몬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만 바꾸어 다음 세대에게까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16세의 레몬: 미싱 앞 엄마의 고군분투


30년 전의 그날은, 제가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16세 겨울이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는 강북의 흔한 여자 중학교였습니다. 한 반에 한두 명은 가출을 하기도 했고, 절반 정도는 여상(상업계 고등학교)으로 진학하는, 지극히 평범한 학교였죠. 그런 환경 속에서 저는 특별한 준비 없이, 그저 **"나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오기로 외국어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겠다고 엄마를 졸랐습니다.

미싱으로 한복에 수를 놓아 하루 일당을 버시던 어머니는, 딸의 고등학교 지원서 작성을 위해 하루 벌이를 포기하고 학교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에게서 대번 이 말을 듣고 돌아오셨습니다.

"은실이는 어렵지 않을까요?"

평범한 학교의 평범한 학생으로 여상이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더라면, 어머니가 이런 말을 들을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난데없이 외고를 가겠다고 하니, 저는 마치 분수를 모르는 모난 돌처럼 정을 맞은 것 같았습니다.


청소년들에게 '큰 꿈을 꾸라'고 사회는 말하지만, 그 꿈을 꾸는 댓가는 "안될 건데 뭣하러 애쓰시나요?"라는 다른 표현으로 돌아오더군요. 이 말은 저를 향한 **'너는 그 그릇이 아니다'**라는 쓰디쓴 낙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지원서에 담임선생님의 도장은 기어코 받아오셨습니다. 저를 향한 불신을 저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연료로 삼아 결국 저는 선생님의 예상을 뒤엎고 외국어고등학교에 턱걸이로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표 레모네이드 레시피: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아


그 후 30년이 흘러 지금의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 큰애는 영재원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아이가 시험에 떨어진 것보다, 꿈을 꾸기도 전에 '넌 안 돼'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좌절감을 어떻게 감싸주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제가 16세 때 느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저는 30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제 아이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생겼습니다.


"〇〇아, 너의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의 가능성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세상이 던진 '너는 안 돼'라는 쓰라린 레몬은, 우리가 그 말을 듣고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길을 선택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30년 전, 저의 첫 번째 레몬은 그렇게 지금의 저를 만든 첫 번째 시련이었고, 이제 저는 이 경험을 제 아이에게, 그리고 지금 쓴 레몬을 쥐고 있는 당신에게 **"당신도 레모네이드를 만들 수 있다"**는 용기로 전달하려 합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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