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 혹은 신이 숨겨놓은 직장이라고 불리던 곳에 다니고 있었다.
안정과 모험 사이에서 나는 6개월을 망설였다.
5년간의 회사 생활을 통해 나는 회사에서 내 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안정을 포기한 대가를 감당할 수 있을지, 회사를 나간 뒤 이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을지 끝없는 회의와 싸워야 했다.
답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그 자리에 붙잡아두고 있던 어느 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주저앉아 있던 나에게 엄마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해라.”
그때 처음 알았다.
생각만으로는 인생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
결국 선택을 해야만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나는 사표를 냈다.
어떤 동기는 나를 부러워했고, 어떤 사람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기로 입학했다.
전북 익산.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이름만 들어봤을 뿐, 그전까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도시로 내려갔다.
지방 사립대 로스쿨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사실은 입학 전부터 로스쿨 커뮤니티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사법시험이 유지되고 있던 시기,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단 3년 만에 변호사 자격을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넘쳐났다. 함께 로스쿨을 준비하던 한 선배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법학 전공자도 아닌데,
지방대 로스쿨까지 나오면
법조인으로서 출발부터 낙오자야.”
가지 말라는 충고였다.
지뢰밭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입학과 동시에 3년 전액 장학금을 보장받았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모든 장애물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
입학 후 교수님들과의 면담 시간.
한 교수님은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왔나.”
공기업에 계속 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평범하게 살지 왜 굳이 미래가 불투명한 로스쿨에 왔느냐는 뜻이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서른 초반. 대부분의 여자 입학생들이 대학을 갓 졸업한 것과 달리 나는 5년 넘게 회사를 다니다 입학했고,
여자 중에서는 나이가 가장 많은 편이었다.미혼이었고, 법학을 공부한 적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참 이해하기 어려운 입학생이었다.
마치 나 혼자 풍랑이 치는 바다 한가운데 내던져진 것 같은 기분으로 첫 학기를 시작했다.
3년 안에 나를 변호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무리한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왜 그만뒀냐”는 질문은 끝났지만,
다른 질문이 시작됐다.
“어디 나왔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