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레몬 : "멀리서 오셨군요"

"여러 차례 내부 논의를 거친 끝에,
이번에는 함께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귀하와 함께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


받은 편지함을 열면
늘 같은 문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이력서 파일을 다시 열었다.

이메일을 쓰고,
지우고, 또 썼다.

원하는 답장은 끝내 오지 않았다.


로펌이라는 닫힌 문 앞에서
서성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급함만 커졌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서른 중반을 넘긴 여자였고,
지방대 로스쿨 출신이었다.

취업이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은
이미 수없이 들어왔다.


검찰 연수에 참가하던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한 검찰 간부가 내 이름표를 보며 말했다.

참석자들은 모두 출신학교와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멀리서 오셨군요.”

수도권에 있는 검찰 연수원을 기준으로 볼때

원광대가 있는 익산보다 강원도는 더 멀고,
부산도 더 멀었는데도.

그 말은 거리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때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하나 남아 있었다.

지방대로스쿨을 나와도 불리하지 않을 수 있는 곳.

법원 재판연구원이었다.


그리고
로스쿨 1기,
첫 기수의 재판연구원이라는
이름이
내게 붙기 시작했다.


합격 메일의
맨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적혀 있던 첫 근무지.

서울고등법원.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는
묻지 않았다.

오직
객관적 평가만으로
나를 보던 자리였다.


그래서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자리를 찾았다.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다섯 번째 레몬: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