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장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이 시작된다.
마귀는 예수를 '거룩한 성의 성전 꼭대기'로 데려갔다고 한다.
왜 '거룩한 성'으로 데려갔을까.
높은 곳이 거룩한 성의 성전 꼭대기 밖에 없어서였을까?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마귀에게 예수를 데려갈 이 지구 위에 높은 곳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뛰어내려서 죽을 수 있는 고도가 단지 성전 꼭대기만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성'의 '성전'은 무엇을 의미하는 장소일까?
광야와 그곳이 차이를 가지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
나는 '군중'이라고 생각한다.
광야에는 사람이 없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예수를 천사들이 바람 같이 나타나 받들더래도 환호하고 모여들 군중이 없는 곳이 광야이다.
하지만 거룩한 성의 성전은 다르다. 오히려 군중에게 가장 상징적인 장소이다. 가장 눈부시고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오늘날로 치면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광장쯤이 되지 않을까?
유대인인 예수도 거룩한 성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린 다는 것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귀의 질문의 본질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약속한 대로 너를 보호하냐 안 하냐 보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마귀는 예수가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 이미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광야로 나아온 것이다.
마귀의 요구는 '너 기적을 보여줄 수 있잖아? 대중의 환호를 받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해!'가 아닐까 싶다.
첫 번째 시험이 '하나님의 때와 방법 앞에서의 자아의 죽음'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두 번째 시험은 '사람의 인정과 비난 앞에서의 자아의 죽음'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된다.
경건하고 겸손한, 성령의 사람이던 사역자들의 사람들의 환호, 존경 그리고 인의 장막에 둘러싸이게 되면 금방 겸손함이 변질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역자가 아닌 일반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 꿇던 가난한 청년이 사업으로 돈 좀 벌고 주변에 사람이 몰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교만이 목까지 차오른다.
점점 사람의 인정에 중독되게 되고, 나중에는 그 인정과 인기를 잃을 것이 두려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행하지 않는 악한 일들을 저지르게 된다.
이토록 사람의 인정과 비난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강력하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사람'으로부터 자유해야 했고, 마귀는 대중 앞으로 데려가 무명의 예수에게 성경을 인용해 인기를 얻을 기회를 유혹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Do not put the Lord your God to the test.'
질문을 하는 마귀와 답변을 하는 예수님이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아가 죽은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바라본다.
하지만 자아가 죽지 않고 자신이 신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사용한다.
자신이 하나님과 대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한 도구일 뿐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오늘도 신실하게 일하고 계시지만,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은 이들에게는 그 말씀의 효력을 테스트할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들에게 그것은 사용할 도구가 아닌 순종의 대상인 까닭이다.
나는 사람으로부터 지금 이 순간 자유로운가? 이 세상 모두가 나에게 환호할 때나 손가락질할 때나 변함없이 나의 시선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는가?
마귀의 두 번째 질문은 오늘도 매일 같이 나의 목 끝을 겨냥하고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도 모르게 사람의 이목에 매여 있던 모습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매일 아내와 깊이 서로의 삶을 나누며 하나님 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막막했던 12월에도 높은 매출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딸에게도 좋은 기회를 주셔서, 때를 따라 부모된 우리에게 합당한 교육을 고민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평안을 깨는 두려움에 대한 거부감과 민감함을 주셔서, 마음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