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절에서 사용된 '온유'의 원문 그리스어 단어는 πραΰς(음역하면 PRAUS)이다.
NIV에서는 Meek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한국어인 '온유'나 영어인 'Meek'이나 '온순하다. 착하다. 유하다. 수동적이다.'라는 의미가 우선 다가온다. 보호가 필요하고 걱정이 앞서는 어린양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리스어 PRAUS는 "strength brought under control(통제된 힘)"의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 단어를 사용하던 대표적인 경우가 "고삐에 길들여진 야생말"이라고 한다.
야생마는 그 넘치는 힘을 야생에서는 자기가 뛰고 싶은 방향으로 뛰는 데 사용했지만, 고삐에 훈련된 야생마는 오직 고삐가 이끄는 방향으로 자신의 힘을 힘껏 사용한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관점에서 '온유한 자'란 잘 훈련된 야생마와 같이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능력과 생각과 힘을 오직 성령이 이끄시는 길로 발휘하고 사용하는 자를 의미할 것이다.
어르신들이 흔히 쓰시던 말 중에 올바른 통제와 가이드를 벗어나서 틀린 방향으로 질주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단어가 있다. PRAUS의 반대되는 한국적 표현이 바로 이 고삐 풀린 망아지가 아닐까 싶다.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표현하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태복음 11:29)"에서 쓰인 온유도 바로 이 PRAUS이다. 성령님의 뜻을 따라 당시 살기등등하고 절대권력을 가졌던 기존 지도층 세력에게 머뭇거림 없이 대항하고 복음을 전파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예수님의 발자취를 볼 때 성경이 말하는 온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다.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여기서 표현하는 땅(the earth)이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부동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령 안에서 온유한 삶을 살고자 하는 억만장자에게 땅이 몇 만평 더 생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혹은 병이 깊어 일주일 뒤에 죽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땅 몇 천평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약속하신 땅은 분명 상징적인 의미이다.
우선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필요를 우리 각각에게 가장 합당한 방법과 양으로 채워주심을 의미할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19)
하지만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약속하신 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죽음 전을 살고 있는 지금과 그 이후를 관통하는 영생과 구원을 의미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일까 성령이라는 고삐에 잘 훈련된 적토마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망아지임에 틀림없다. 오늘부터 모든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성령을 의식하고 그분의 인도에 따라 걸어야겠다. 그리하여 약속하신 풍성한 쓸 것과 영생을 공급받는 약속을 누리는 삶을 이루기 간절히 원한다.
온유. 즉, 성령님께 매인 삶은 그래서 축복이다.
나의 의지와 뜻대로 내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는 것이 복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게 고삐가 매여 성령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축복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매일 출근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주시고, 함께 고민하며 삶을 나누며 일할 수 있는 유능한 동료들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이웃을 예비하여 주셔서 이국 땅에서의 삶에 큰 의지가 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희생하는 삶이 더 많이 움켜쥐는 삶보다 나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