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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May 07. 2018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

이사야 57 : 14-21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신다. 

하지만 그 분이 동시에 거하시는 곳이 있다고 오늘 말씀은 증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통회하는 자(who is contrite), 그리고 마음이 겸손한 자(lowly in spirit)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때가 되어 이 육신을 떠나 그 분이 계신 높고 거룩한 곳에 이르기 전에, 

이 땅에서 바로 오늘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려면, 또 그 분의 임재안에서 그 분과의 깊은 친밀함 속에 살아가려면, 통회하는 자, 마음이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통회란 무엇이며, 마음이 겸손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통회(痛悔)라는 단어 자체가 참 어렵다. 

한자는 '아플 통' '뉘우칠 회' 이며, 영어 성경은 Contrite (feeling or expressing remorse or penitence; affected by guilt) 라는 단어로 해석을 했다. 즉, 죄책감에 의해 찢어지는 가슴으로 뉘우침을 의미하는 듯 하다.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자는 바로 이런 '통회'하는 자라는 사실이 새롭다. 

'주여 이 시간 이 자리에 임재하여 주옵소서'라고 눈감고 점잖게 기도한다고 주님이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통회가 있는 마음.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돌아보며 찢어지는 가슴으로 죄를 뉘우치는 그 마음에 임하신 다는 것이다. 


문득 오늘 예배 시간에 회개하자는 목사님의 말씀에 머릿 속으로 요 며칠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몇 가지 떠올려 보며 하나님께 고백하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픔 따위는 없었다. 부끄러움도 없었다. 기계적에 더 가까왔던 것 같다. 

'어차피 그 죄 또 질 것이니깐. 여지껏 노력많이 했지만 잘 안되었으니깐. 어차피 천국가기 전까지는 죄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거니깐. 솔직히 이 정도면 괜찮은 편 아닌가?'

오늘 말씀을 통해 그것은 통회가 아님을 명확히 깨닫게 된다. 그런 마음에는 하나님의 임재는 없다. 


마음이 겸손한자.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립보서 2장 8절)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은 '자아의 죽음' 이라는 꽃에 맺히는 완전한 열매"라고 겸손을 정의한 바 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철저히 자신의 자아가 죽을 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있다. 

죽어야 살고, 져야만 승리하는 기독교의 길이다. 


겸손만이 완전한 죽음으로 이르게 하고, 완전한 죽음만이 겸손을 완성시킨다. 

그래서 겸손과 죽음은 하나이다. 겸손은 꽃이고 완전한 죽음은 열매 이다.

완전히 자아가 죽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포기하고 그분에게 인생의 주권을 내어드린다. 

자신을 포기하고 그 분의 종이 된다는 것은 그 분의 이끄심에 무조건적인 '순종'을 의미한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셨던 것 처럼, 그 영이 소생되고 영생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겸손은 죽음으로, 죽음은 순종으로, 순종은 영생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 '자신의 자아와 인성에 대한 완전한 죽음'은 우리의 능력이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죽음의 능력'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나의 의지와 성실함으로 죽겠다고 노력해서 죽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낮은 마음으로 완전한 죽음에 대해 나는 무기력한 자임을 인정하고, 그 분의 일하심을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이들의 간구와 마음을 받아주실 것이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로마서 6장 11절)


통회하는 자와 겸손한 마음에 임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저로 온전히 통회함을 위한 죄에 대한 민감함을 허락 하소서. 온전히 저의 자아가 죽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겸손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처럼 낮은 마음으로 성령의 일하심을 기다리게 하시고, 주님의 얼굴을 뵙는 그 날을 향해 잠잠히 기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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