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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May 08. 2018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이사야 59:1-8


보라. 여호와의 손이 너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귀가 너무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이다. 너희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이재철 목사님의 "비전의 사람"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비전은 어떤 일의 이룸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라는 글을 읽고 한동안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하나님이 비전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이제는 그 말씀에 깊이 공감이 간다.

다윗이 그의 전 삶을 통해 결국 이루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시편 27장 8절)"이었다. 왕권을 자손만대 유지하는 것도, 더 부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비전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 자체였다. 그 많은 다윗의 실수와 죄악에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용서하시고 기뻐하신 것은 바로 그의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삶을 통해 추구해야 할 바도 동일하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다.


오늘 말씀은 "너희의 죄악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다"라고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얼굴을 죄로 가렸다는 것이다.


문밖에 서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그림이 생각난다. 문을 닫은 주체는 나이다. 그 분이 응답을 안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통회하는 것이란 문을 여는 것임을 깨닫는다. 감은 눈을 뜨는 것이고, 막았던 귀를 여는 것이다. 내 죄악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던 벽을 산산히 부셔버리는 행위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통회하는 자, 겸손한 마음과 함께 거하겠다라고 약속하셨다.


통회하는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온전히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나의 삶이 통회하는 삶이 되게 하시고 죄에 대해 결벽증 같은 민감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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