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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Jun 26. 2018

그는 곧바로

사도행전 9:10-22

그리하여 아나니아는 그 집을 찾아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으며 말했습니다. “사울 형제여, 오는 길에 당신에게 나타나셨던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 당신이 다시 볼 수 있게 하시고 성령을 충만히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더니 그가 다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후 음식을 먹고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며칠을 함께 지냈습니다. 그는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9:1)

사도행전 9장에서는 사울의 극과 극의 모습이 서술된다. 

그리스도인이 싫은 수준이 아니라 "살기가 등등" 했다고 성경은 묘사하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원한이 사무쳐서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까? 부모, 형제의 원수도 아닌데 말이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흐리는 이단에 대한 분노였다면, 이 역시 수상하다. 사울이 하나님의 영과 친밀한 관계였다면 결국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어찌 그리 형제에 대해 긍휼 한 마음은 없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을까. 

사울의 살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살기는 예수와 초대 교인들을 향한 사탄의 살기와 더욱 맥이 닿아 있다. 


그는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아나니아를 통해 세례를 받은 사울은 곧바로 복음은 전하기 시작한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변화이다. 단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3일간 눈이 멀었던 것에 대한 충격 때문일까?

아니면 또 장님이 될까 두려워서일까? 


그 해답은 아나니아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는 길에 당신에게 나타나셨던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 당신이 다시 볼 수 있게 하시고 성령을 충만히 받도록 하셨습니다

사울은 단순히 신체적으로 눈을 뜬 것이 아니라, 성령을 충만히 받은 것이다. 당연히 진실을 보게 된 것이다. 

성령이 충만히 받기 전후의 사울이란 사람의 극단적인 케이스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람은 근본적으로 '도구'이다. 하나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은 '내가 택한 그릇'이라고 설명하신다. 

사람은 자신이 근본적으로 'Contents'이고 싶어 한다. 자신이 단지 내용물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에 불쾌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지혜이고 겸손이다. 우리는 그릇이자 도구일 뿐이다. 


그 그룻에 사탄이 담길 수도 있고 성령이 담길 수도 있다. 

오늘 사울의 케이스를 보면 무엇이 담겼는가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180도 바뀔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그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충만한가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흉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던 지난날들이 스쳐가며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를 그릇으로 만드신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사울이란 동일한 그릇에 무엇이 담겼는가에 따라 흉기였던 한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귀한 도구로 쓰임 받음을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회사에서, 나의 하루 속에서 온전한 사람 낚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제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일하는 주님의 그릇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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