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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Jul 03. 2018

다소에 가서 만나매

사도행전 11 : 19-30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안디옥에서도 복음이 크게 전파되어 바나바가 급히 예루살렘에서 파견된다. 

안디옥에 가서 하나님의 역사의 규모를 본 바나바는 동역자를 찾아 다소로 향한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잠시 사울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소라는 지금의 터키지역에서 출생한 혈기왕성한 사울이라는 청년은 입신양명 및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겠다는 청운의 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입성해 교육받고 종교인으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키워나갔을 것이다. 


유대교에서 촉망받던 사울은 유대교에 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살기가 등등하여 활동을 하다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경험을 한 후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한다. 그 이후 그는 그를 아직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회피 대상이 되고, 유대인들에게도 숙청 1호가 되어 쫓기는 삶을 살다가 별 다른 사역자로서의 성취도 없이 사도들의 권유에 의해 고향인 다소로 돌아간다. 


고향에서는 사울을 어떻게 맞이 했을까? 

상상을 해보자면 촉망받던 다소의 자랑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이단에 빠졌다는 소문, 유대교를 배교했다는 소문, 더 나아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다소의 모든 유대인들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고향의 유대인들은 그를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부모와 친척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어려서 함께 자란 친구들은 그를 어떻게 대했을까. 사울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어쩌면 고향보다 다른 곳이 버티기 더 쉽지 않았을까. 


사울은 대체 다소에 얼마나 있었던 것일까?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무려 13년이라고 한다. 

촉망받던 청년 사울이 다메섹 사건 이후 13~15년 동안 초대교회에서도, 유대교에서도 아무도 찾는 이 없이 조용히 잊는 듯 없는 듯,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 것이다. 

사울은 그렇게 다소에서 자아가 죽어지고, 자신의 꿈들을 스스로의 손으로 깨뜨려 가며, 낮은 마음으로 영글어 갔다. 참된 십자가의 그리스도인으로 숙성되어 간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던 사울에게 어느 날 바나바가 찾아온다. 안디옥에서의 공동 목회를 제안한다. 

사울의 마음은 어땠을까. 문득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던 늙은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집트로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라고 하셨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모세의 부르심 이후의 활약이 그랬듯, 사도 바울의 그 이후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완전히 낮아진 마음들 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그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낮아지지 않은 마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다가는 오히려 그것이 그에게 교만의 올무가 되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삼손과 사울왕 등의 안타까운 종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주님은 사랑하는 이들을 쓰시기 위해 완전히 마음속의 심이 녹아버릴 때까지 그를 가장 낮은 곳에서 숙성시키신다. 그리고 그곳에 임하신다. 


낮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 제게 낮은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겠다고 나섰던 모습들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했던 사울과 다름없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저 아무도 보지 않고 관심 없는 낮고 어두운 그곳에서 주인의 쓰임을 겸손히 기다리는 그릇들과 같이, 한없이 낮고 온유한 마음으로 그렇게 영글어지는 주님의 도구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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