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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Jul 15. 2018

인정함이러라

사도행전 16 : 1-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인간의 노력은 허무하다. 

상식은 "노력과 결과는 정비례"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죽도록 노력을 했음에도 원하는 바가 이루어 지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며, 다른 사람보다 남다르게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성과를 쉽게 이루는 경우도 많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의 원인을 자신의 노력으로 돌린다. "열심히는 했지만 저보다 더 열심히 하시는 분들도 많은걸요. 사실 다른 사람들 보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라고 사실을 말하면 대중의 반응이 싸늘하기 때문이다. 인터뷰어들도 당황해 한다. 

"얼마나 죽도록 고생하고 댓가를 치루었는지"를 집중조명해야 대중은 안도하고 환호한다. '아 나도 노력하면 되겠구나'라는 동기부여를 얻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지 저사람은 엄청난 댓가를 치루었기에 저 자리에 간거야'하며 자신이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위로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희망고문이자 거짓이다. 


세상에는, 아니 주변만 돌아보아도 장시간 암중모색하며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결과가 안나오는 사례가 많다. 

반면 타인들 대비 딱히 남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좋은 대학에 가고, 승진이 잘되고, 사업이 번창하고, 선교가 잘되는 경우도 수 없이 빈번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의 여부는 노력의 양 보다도 하나님의 섭리 관점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옳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성과를 위한 기본재료일 뿐, 필수재료는 아니다.

자신의 노력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교만이나 자책감 중 하나로 귀결되지만, 하나님의 섭리에서 원인을 찾는 이들은 일이 잘되었을 때 겸손하여 진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물론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평안하다. 전능자의 인도하심을 믿는 까닭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 6절과 7절에서 두번에 걸쳐 바울과 디모데는 아시아 지역(서쪽)으로 가려고 뜻을 품으나 성령이 막으시는 것을 보게 된다.  


더베에서 무시아까지는 쉬지않고 걸어도 두달이 넘게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더베에서 한번, 무시아에서 한번 두번에 걸쳐 바울은 동쪽으로 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오늘 말씀에서 엿볼 수 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설명하고 있지 않으나, 성령은 바울의 뜻을 꺾고 그리스 지역(서쪽)으로 가도록 인도한다. 


우리도 큰 뜻을 품고 인생의 많은 자원을 쏟아 부어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년을 밤을 새워가며 건강과 젊음을 바쳐 원하는 학위나 고시에 도전을 하지만 다수는 실패를 한다. 

인생에 어렵게 모든 돈을 사업에 투자하여 비즈니스를 하지만, 3년안에 90%이상이 폐업을 하는 것이 통계이다. 

대중이 기억하는 성공한 목회자도 언제나 소수이며, 

성공한 정치인도 연예인도 언제나 소수이다. 


즉, 전심으로 기도하며 어디에나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의 노력과 심혈을 기울였지만 성령님께서 그 길을 막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선교에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건 바울에게 두번의 좌절은 우리가 인생에서 그러하듯 큰 좌절의 시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좌절한다. 

"왜 아시아 선교가 이렇게 막히는 것이지? 내 사리사욕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일인데,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바울의 대응은 다음과 같다. 

인정함이러라

그는 즉시 방향을 바꾼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정(concluding)한 까닭이다. 


바울을 그리스를 향하게 되고, 결국 그의 여정은 로마제국의 심장부인 이태리 로마에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 이후 약 300년 뒤에 로마제국의 국교가 크리스트교로 바뀌게 되고, 당시 로마제국의 막강한 영향력 속에서 중동의 작은 지역의 종교였던 크리스트교는 전세계로 퍼지게 된다. 세계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BIG PICTURE 속에서 바울은 그 시점에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갔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바울은 죽기전까지 그 BIG PICTURE를 이해하지 못했다. 또 300년 뒤에 대로마제국의 국교가 자신이 전하던 크리스트교로 개종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스케일과 사람의 스케일은 규모의 시간의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광대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막으심 앞에서 작고 미약한 우리의 반응은 '이해'가 아니라 '인정'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반항하지 말고 신속히 항복하고 순종할 수록 하나님의 BIG PICTURE가 그려지는 시간이 단축된다. 

사탄은 '이해와 노력, 그리고 단기적 성과'을 강조하지만, 성령은 '인정과 순종, 그리고 장기적 성과'를 강조한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태초전 부터 말세까지 예정된 구원계획을 신실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 거대한 하나님의 그림 속에서 나의 이해를 구하기 보다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심어주신 곳에서 순종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곳으로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순종을 주시옵소서. 눈앞의 성과, 당대의 성과에 집착하게 마시고, 하나님 관점에서의 성과를 믿고 오늘 하루 한걸음 내딛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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