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 : 1-12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가에 앉아 있다가 바울이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곯아떨어진 그는 그만 3층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일으켜 보니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바울이 뛰어 내려가 유두고 위에 엎드려 그를 껴안고 말했습니다. “소란 피우지 마시오. 그에게 목숨이 있소.”
그러더니 바울은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빵을 떼어먹은 후 날이 샐 때까지 오랫동안 강론을 하고서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살아난 청년을 집으로 데려가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울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를 따돌리고 바울은 드로아에 도착한다.
내일 드로아를 떠날 예정인 바울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한다.
이에 3층 다락방에 가득 모인 사람들을 위해 바울은 한밤 중까지 강론을 계속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리가 없어서였을까? 위험하게도 창가에 걸터앉아 있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집회 도중 졸도가 창문 밖으로 떨어져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좋은 목적으로 모인 자리인데,
너무나 안 좋은 일이 발생해 버린다. 너무나 무의미한 젊은 이의 죽음이다.
돌아보면 이런 일들은 일상 속에도 항상 있는 것 같다.
분명 좋은 뜻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시작한 일인데 나 스스로도 변명할 거리가 없을 정도의 안 좋은 일이 생기곤 한다. 복음의 길이 막히는 것 같고, 스스로도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이미 사람들이 죽은 것을 확인한 상황에서 아래로 내려간 바울은 상황을 전환시킨다.
“소란 피우지 마시오. 그에게 목숨이 있소.”
그리고 다시 올라가 식사를 하고, 해가 뜰 때까지 말씀을 전하고, 떠났다.
사람들은 살아난 청년을 집으로 데려가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and were greatly comforted)
왜 사람들은 큰 위로를 받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는 가까운 이가 안타까운 죽음에서 살아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인했기 때문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 많은 일들이 예상도 못한 풍랑과 벽 앞에 좌절될 때까 많다. 그럴 때면 마음속에 의심이 들기도 하고, '아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라는 생각에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에 휩싸일 때가 있다. 어느 하나 나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나 스스로 나를 보아도 한심하기 그지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바울과 같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잃지 않은 단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은 결국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신다.
물론 유두고의 살아남의 기적 이후에도 많은 어려움이 드로아 교회 공동체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두고의 살아남의 사건은 그 교회에 잊지 못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상징'으로 믿음이 다시금 흔들릴 때마다 큰 의지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오늘 유두고의 살아남을 통해 드로아 교회가 큰 위로를 받은 것처럼, 우리 삶의 어려움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크고 작은 기적들을 통해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보여주심에 큰 위로를 받고 감사드립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지만, 아빠의 손을 잡고 낯선 곳에서도 당당히 걸어가는 아이처럼 오늘 하루를 그렇게 온전히 걸어내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