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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Jul 27. 2018

성령의 강권하심 가운데

사도행전 20 : 13-24

그리고 지금 나는 성령의 강권하심 가운데 예루살렘에 가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내가 아는 것은 어떤 도시에 가든지 감옥과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성령께서 내게 증언해 주실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서 내게 주신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을 다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하는 설교이다. 

성령의 강권하심 가운데 예루살렘에 가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not knowing what will happen to me there). 

사람은 누구나 예측되지 않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은 항상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섭리와 Big Picture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이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브리서 11:8)

아브라함도, 요셉도, 출애굽의 광야 위의 이스라엘 백성도, 다윗도, 바울도 자기의 갈 길을 환히 보고 살아갔던 이들은 없었다. 

나 역시 현재도 성령께서 인도하실 내 인생의 앞 길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으나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을 주셔왔음을 깨닫게 된다 

어떤 도시에 가든지 감옥과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성령께서 내게 증언해 주실 뿐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가시밭 길, 좁은 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마태복음 7:13)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 자체가 십자가의 길이었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가 걸어갈 길이 크고 넓은 길일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알면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그 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인 까닭이다. 오늘의 바울도 감옥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문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그 문이 '생명의 문'인 까닭이다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자유함의 궁극은 이 땅에서의 목숨에 대한 자유 함일 것이다. 내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소중한 사명을 향해 인생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자유하다. 바울은 그 대상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서 내게 주신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선명한 사명을 가지고 달려가고 있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으며, 죽음과 고난조차도 두렵지 않은 까닭이다. 바울의 설교를 보며 그는 이미 천국에 가기 전부터 영생을 살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6절)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주님. 오늘 예루살렘을 향하는 바울의 모습 보며 비장함보다는 자유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미 영생을 살고 있었기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죽음과 고난으로부터 자유한 그의 삶을 보며 제가 살아가야 할 방향성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내게 주신 달려갈을 묵상하며 하루를 살게 하시고 주님의 인도 안에서 참 자유함을 누리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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