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 : 1-14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눈이 멀었던 이후부터 다메섹에서 긴 시간 낮아짐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쓰임을 받기 시작하여 3차 전도여행까지 마치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이 시점까지 바울은 바울을 죽이려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그가 세상의 힘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위협과 살해 시도에도 불구하고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동행 때문이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 앞에 여러 형제들의 만류가 반복된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두로에 머물자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깨달은 제자들은 바울의 행보를 만류한다.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가이사랴에 이르자 유대로부터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내려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을 예언한다.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다시 한번 바울을 만류한다.
성경은 이 예언이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감동으로", "성령이 말씀하시되"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여태껏 "아무도 너를 죽이지 못하도록 내가 너를 보호하겠다"라고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이제는 친히 "네가 예루살렘에 돌아가면 결박당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이다"라고 다른 믿는 이들을 통해 친절히 설명해 주고 계신 것이다.
같은 정보를 들어도 그것에 대한 반응은 정 반대이다.
바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가서 고난을 당한다고? 그러면 가지 말아야지! 아직 하실 일이 많은 분이데"라고 반응했다.
하지만 바울은 상상하건대 "아, 이제는 이 땅에서의 나의 사역이 마무리가 지어져 가나 보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 곁으로 부르실 시점이 다가오나 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결국 실제로 바울이 죽음을 맞이한 곳은 로마였지만, 본문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은 "아 내가 예루살렘에서 죽는가 보구나"라고까지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아무도 너를 죽일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시던 성령은
"얘야, 네가 이제는 내 품으로 올 날이 다가온단다. 미리 말해줄 테니 역시 걱정하지 마렴,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이라고 상세하게 바울을 인도하신다.
그러한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바울에게 결박과 죽음이란 두려움의 대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고되었던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속히 주님 품으로 안기기를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성령님은 이렇게 세밀하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앞길을 모두 예비하신 하나님. 오늘 친밀하고 세세하게 사역의 시작부터 그의 순교에 이르기까지 바울을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모습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주님 품에 안기는 그 날까지 성령님의 인도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고 민감한 영성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