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렌스 Aug 16. 2018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사도행전 27 : 13-26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모든 상황 속에서"라는 찬양의 노랫말처럼, 우리가 주를 찬양할 때는 말 그대로 모든 상황 속이다. 

모든 상황이란 배부르고 등 따스한 때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 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을 때, 나를 미워하고 공격하는 사람들로 둘러 쌓였을 때,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때를 당연히 포함한다. 극단적으로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이유로 비명횡사를 하는 죽음의 상황도 물론 포함될 것이다. 


이른바 폭풍 속에 버려진 한 조각배 같은 신세가 되었을 때,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그러한 상황 속이야말로 주를 찬양할 적기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인 까닭이다. 

무슨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인가 싶다. 


겸손이 무엇일까 항상 생각해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생의 참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또 신실히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신다'라는 것을 아는 것이 겸손이 아닐까. 


이 넓은 우주의 먼지 같은 나와 우주보다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의 차이를 깨닫는 것. 그렇기에 전적으로 그분의 선하심과 완전하심을 믿고 순종하는 것. 즉, "하나님의 섭리"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것이 겸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세상 사람들은 원치 않던 영문 모를 어려움이 닥쳤을 때 "악재"라고 한다. 굿을 해서라도 그것을 예방하거나 피하려고 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그것은 '나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상황에 대한 판단의 주체는 사람이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것이다. 영문을 내가 알고 모르고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본디 아무것도 모르는 까닭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사실 기독교의 이런 관점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까닭은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은 까닭이다.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음에 대한 욕구는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인류 역사에 현재까지 지겹게 반복되어온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대립은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대립이며, 

인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부추김에 선악과를 따 먹어 실낙원을 한 이유도,

더 거슬러 올라가 루시퍼가 사탄이 된 것도 본질은 스스로 신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도를 할 때 사용하곤 하는 사영리의 대전제는 "당신은 죄인입니다."이다. 

여기서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한 불쾌감을 느낀다. 

당신은 '신본'이 아닌 '인본'이기에 이미 첫 단추가 잘못 맞추어져 있다는 지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직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 안에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로 향하는 바울의 여정은 겉으로 보기에 고되기만 하다. 하지만 바울의 일행이 풍랑을 만나고 죽음 앞에 놓이게 되자 그동안 무시당하던 바울의 위상이 달라진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높이고 그의 사역이 온전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연재해를 일으키신 것이다. 물론 그 시점에는 바울도 영문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 믿었기에 담대하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우리가 모든 상황 속에서 할 일은 기뻐하고,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는 것뿐이다. 

나의 납득과 이해에 앞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나의 삶을 던지는 겸손함이 제자도의 길일 것이다. 


광대하시고 전능하신 나의 주님. 나는 신이 되기 원치 않습니다. 오직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고백하고 찬양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실체임을 깨닫고 인정합니다. 때문에 목마른 사슴과 같이 주님을 갈급히 원합니다. 주의 영을 부으사 크신 사랑 안에서 주를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매거진의 이전글 상소했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