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렌스 Aug 22. 2018

조상들이라

역대상 1 : 1-4:43

아담, 셋, 에노스,게난, 마할랄렐, 야렛,에녹, 므두셀라, 라멕,노아, 셈, 함과 야벳은 조상들이라

인류의 역사는 아담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인류는 역대상 1장 1절부터 4장까지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번성되어 감을 서술한다. 

이 네 개의 장이 숨 가쁘게 넘어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희로애락 속에서 살다가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사라져 갔을까 묵상해 본다. 

"조상들이라"로 묶인 위의 한 단락만 보아도 실낙원부터 인류 최초의 살인, 대홍수와 방주까지 많은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족보를 읽다 보면 궁금함이 생긴다. 이 수많은 족보의 가지 중에서 왜 하나님은 한 라인을 '택하셨을까'이다. 아담의 아들 중에서 셋을 택하셨고, 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노아를 택하셨으며, 왜 아브라함을 택하셨을까 하는 점이다. 대체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역으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왜 선택을 받지 못했을까 궁금하다. 그들은 모두 너무나 악해서 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가 궁금하다. 


정답은 '모른다'이다. 더 나아가서 '알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고, 인간 세계에 끊임없이 간섭해 오셨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때에 재림하셔서 이 인간 세계를 태초의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의 운용 속에서 한 찰나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나의 삶에 개입하고 계시고 내게 기쁨도 주시고 연단도 주신다. 낙심도 주시고 근심도 주신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나를 빚으시고 날카롭게 다듬어 가신다. 


거대한 그림의 아주 작은 점이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한 찰나를 살아가는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납득을 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겸손이란 내가 점이고 거대한 그림의 일부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을 그려나가는 화가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주어진 역할에 자족하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 오늘 족보를 통해 그려지는 인간 역사의 한 단면을 보며 나의 실체를 깨닫고 겸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겸손한 점으로서 주님이 그리시는 창조부터 종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거대한 역사에 참여하는 충실한 종이 될 수 있도록 주님에 대한 믿음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