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과제 발표를 준비하며 느낀 점을 공유합니다.
어제 저녁에 법학 박사과정 첫 연구과제 발표를 했습니다.
독점규제법연구 수업에서 "카르텔과 정보교환"을 주제로 하여 카르텔의 일반론과 정보교환의 입법 경과 및 쟁점에 관하여 60분가량 발표를 하였고, 나머지 60분 동안 토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래에서 연구과제 발표에 대한 후기를 간단히 남깁니다.
경영학을 전공할 때에는 "과제 발표"는 무조건! 무조건! 파워포인트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었으나, 법학에서의 "과제 발표"는 HWP 또는 PDF로 작성한 글로 발표를 합니다. 즉 "발표문"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분량은 수업마다 다르겠지만, 이번 수업에서는 폰트 크기 11pt, 줄간격 160%, a4용지 15장 내외 분량으로 준비하도록 교수님께서 방침을 주셨습니다.
결국 "소논문"을 한 편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점은 국문 초록(요약문), 영문 초록을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유일했습니다. 나머지는 소논문을 작성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홍영기 교수님이 쓰신 "법학논문작성법"의 내용을 복습하고 소논문을 작성하는 마음으로 발표문을 준비했습니다.
아! 소논문을 작성하는 것과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논문은 제가 익숙한 분야에서 다루고 싶은 주제로 시작할 수 있지만, "과제 발표"는 제가 잘 모르는 주제로 준비를 해야 하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교수님께서 마련하신 목록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형식임). 소논문 작성을 위해서는 기본 이론을 차분히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으므로), "과제 발표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기본 이론과 기본 판례부터 차분하게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잘 모르는 주제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와 정보교환"이라는 주제는 생소했습니다. 2020년 공정거래법이 전부개정되면서 신설된 내용이고, 최근에 신설된 내용이기 때문에 공정위 심결례, 대법원 판례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교과서, 기본서 중심으로 관련 내용을 이해하고 특히 "왜 정보교환을 규제하는 내용이 신설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1주일은 "공부"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박사논문과 소논문을 읽으면서 학계의 평균적인 식견을 갖추려고 했습니다.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경영학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히 기업 간 정보교환은 필요하고 유익한 것인데, 공정거래법에서는 이 정보교환을 금지하고 규제하겠다고 하니... 혼란스러운 지점도 있었습니다.
이후 1주일 동안 19페이지 분량의 발표문을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발표를 하였습니다. 발표문을 작성하는 시간은 공부하는 시간보다 조금 덜 고통스러웠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으니 조금 뿌듯한 마음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단 한 문장도 베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단 하나의 아이이어도 훔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65개의 각주가 달렸습니다. 부족하지만 제법 진지한 사견도 달았습니다.
PPT 없이 "발표"라는 것을 하려니 매우 어색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대학교수가 학술 발표를 할 때에는 발표문을 충분히 소화하여 발표문을 조금씩 압축적으로 언급하는 정도로 완급을 조절하여야 합니다."라고 발표 요령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발표문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대로 읽는 것도 무방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재미가 좀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첫 발표이니만큼 준비한 발표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도입부는 경영학의 이론인 공급망관리(SCM)로 시작했고, 신선한 시작이라 그런지 교수님도 다른 수강생분들도 관심을 갖고 들어주셨습니다. 법학 발표인데 경영학 이론과 논문을 인용하면서 "왜 기업 실무에서는 정보교환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화두로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공정거래법의 규제 목적으로 넘어가면서 법학 발표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본문을 읽으면서도 해당 각주로 가서 부연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해당 문구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하고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PPT 대신에 PDF를 보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발표문을 그대로 읽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상태"로 과제 발표를 마쳤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본문의 글을 그대로 읽으면서 오히려 부연설명을 하였고,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핵심만 요약하고 넘어가는 완급 조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60분 동안 저 혼자 열심히 떠들었습니다.
발표자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꽤 많습니다. 청중의 수만큼 발표문 출력본이 필요합니다. 법학 발표이니 당연히 관계 법령(공정거래법, 공정거래법 시행령, 부당한 공동행위 심사기준, 정보교환 심사지침)을 양면 인쇄본도 준비했습니다.
수업 30분 전에 도착하여 각 자리마다 오른쪽에 발표문, 왼쪽에 관계법령을 세팅합니다. 그리고 음료수도 세팅합니다. 60분의 발표를 들을 때, 필요한 것은 당분이 들어있는 든든한 음료수입니다. 저는 GS25에서 상큼한 사과주스를 샀습니다. 발표문 오른쪽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도 필요합니다. 과제 발표를 하는 사람은 예상되는 질문에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발표문에서 인용한 논문, 심결례, 판례를 모두 출력해서 인용 부분에 플래그를 붙여놓습니다. 주로 질문과 코멘트는 "각주"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각주"에서 인용한 논문, 심결례, 판례는 머릿속에 잘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박사과정에서의 발표는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배운 결과"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발표문과 발표로 완결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를 하여야 60분 간의 질의응답 시간도 평화롭게 보낼 수 있습니다.
60분의 발표를 마치고, 교수님의 첫 질문이 "이 주제로 실무를 한 적이 있었습니까?"였습니다. 교수님께서 기대하신 수준에 조금은 근접했다는 말씀이자, 약간의 칭찬이었습니다. 발표문의 형식이 소논문과 흡사하여 일단 읽기 편했다고 평을 해주셨습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로펌에서 근무할 때 "기업결합 신고"에 관한 실무를 한 적은 있었지만, 발표 주제인 카르텔(부당한 공동행위)에 관한 실무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고민하여 준비하였고, 특히 '교수님께서 이번 발표에 기대하는 지점이 무엇일까?'에 대하여 포커스를 맞추어 발표문을 준비했습니다. 카르텔 일반론을 다루면서 동시에 정보교환의 "입법 배경과 경과"를 중점적으로 다룬 것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정거래 이슈를 많이 다루어보지는 않았지만, 변호사로서 행정법 특히 규제법령을 다루어본 경험, 경영학 전공자로서 기업 경영실무를 공부한 경험, 사내변호사로 기획조정실 근무 경험으로 기업 간 '정보교환'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실무 사례 등을 발표문에 적절히 녹여낸 것도 좋은 포인트가 된 것 같습니다.
60분 간의 발표, 60분 간의 질의응답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다행히 교수님께서는 발표문을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사항이 없다고 이 정도면 괜찮은 글이라고 마무리 말씀을 주셨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진짜 대학원생이 되어가는가 봅니다.
이렇게 연구자, 학자가 되어가는가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