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담일 때도 있고, 법률상담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법적인 문제가 핵심이 아닐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담 중에서 "꾸준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결혼, 파혼 그리고 이혼에 관한 상담입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도 참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제가 2013년 4월에 결혼을 했는데, 그때와 요즘은 또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2024년, 변호사가 생각하는 "실패하지 않는 결혼의 조건"에 관한 글입니다.
1. 결혼은 냉철한 사고, 두터운 신뢰, 신중한 판단에 따른 결론이어야 합니다.
M&A를 대충 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기업과 기업이 하나로 합병을 하거나,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에는 매우 신중하게 알아보고 따져보고 진행을 합니다. 되돌릴 수 없거나 되돌리기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되돌리더라도 그 이전 상태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회계사, 변호사 그리고 노무사 등의 전문인력이 기업의 상태를 진단합니다. 그것을 실사(Due Diligence)라고 합니다. 회계실사, 법률실사, 노무실사 등을 하면서 M&A를 진행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따집니다. 저도 로펌에서 금융회사, 식음료회사 등의 법률실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천천히 꼼꼼히 진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혼도 M&A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의 부모(친권자)가 됩니다. 여러 결혼 상담과 파혼 상담을 하면서 느낀 점은 M&A처럼 천천히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희망만을 가지고 결혼으로 나아간 사례가 꽤 있었습니다.
물론 M&A처럼 모든 것을 다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건강한 사람인지, 채권채무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가족이나 친족의 재산상황(빚)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하여 최대한 많은 정보를 서로에게 공개하고 상대편의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한 후에 결혼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것은 결코 경우 없는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매너라고 얘기하는 쪽에서 어떠한 사정을 감추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건강, 채무, 가족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과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오픈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야 합니다. 의외로 빚이 좀 많이 있는 사람, 의외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 의외로 가족과 불화가 있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부부재산약정(혼인계약)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혼인신고를 하는 즈음에 법원의 등기소에 부부간의 약속을 공적으로 등록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신랑, 신부가 각각 결혼을 위하여 지출한 재산의 규모는 어떠하고 신랑, 신부가 고유하게 갖고 있는 재산은 어떠한지, 빚이 있다면 그 빚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분담 비율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외에 원하는 사항을 모두 약속하여 계약서를 등기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변호사 입장에서 "등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문서로 간단한 합의사항을 작성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흘러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써놓은 글은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그것을 어기는 순간 이혼 사유가 적립될 수 있습니다.
신뢰는 그렇게 두터워질 수 있습니다. "신뢰"는 "믿음"이기도 하지만, "예측가능성"이기도 합니다. 내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대로 배우자가 행동한다면 "신뢰"는 두터워질 수 있습니다. 사랑만으로는 충분히 믿음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장기적인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문서(합의사항)"이 필요합니다.
결혼 후 가계경제 관리에 관한 사항, 살림과 육아에 관한 사항, 명절과 경조사에 관한 사항, 이직 및 퇴사 등 커리어에 관한 사항 등 결혼 전에 합의를 할 사항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항에 관한 합의, 최소한 논의를 끝내놓은 후에 스드메를 정하고, 신혼여행지를 정하고, 결혼식장을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을 이와 반대입니다.
결혼식날까지 돈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의사결정은 적극적인 반면, 결혼식날 이후의 현실에 대한 합의는 매우 소극적입니다. 결혼은 캠핑도 아니고, 소꿉놀이도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만나서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어 가는 지난하고 어려운 수 십 년의 긴 여정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합의사항들은 그 긴 여정을 힘들지 않게 지내게 해 줄 일반원칙과 같습니다.
충분한 데이터에 기반한 냉철한 사고, 결혼 이후의 합의사항으로 두터운 신뢰를 형성했다면 결혼에 대한 판단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할 자신과 의지가 남아있다면, 그 결혼은 실패할 확률은 크지 않습니다.
2. 결혼 이후에도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본능과 본성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연애할 때, 결혼을 준비할 때까지 본능과 본성을 숨기고 살았다면, 결혼 이후에도 그러한 본능과 본성을 계속 숨기고 살아야 합니다.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결혼을 했으니, 혼인신고를 했으니, 이제 되돌릴 수 없으니, 이제 좀 편하게 살아보자!라는 마음을 먹으면, 실패한 결혼의 확률을 급격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결혼 전까지 숨겨왔던 나의 본능과 본성이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감추고 싶었을 본능과 본성이었을 것입니다. 결혼 후에 조금씩 그 숨겨왔던 나의 본능과 본성을 배우자에게 오픈하는 것은 나에게는 무척 편한 일일 수 있지만, 배우자에게는 예상치 못한 상황의 반복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원래 집에서 이렇게 살았어."라는 말은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니, 네가 이해하여야 한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배우자 입장에서는 처음 접하는 상황을 앞으로도 계속 접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결혼생활의 첫인상을 망치게 하는 말입니다. 신혼이혼에서 주로 언급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커 왔던 가정에서의 생활양식과 달리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RESET 한다는 마음으로 기초부터 하나하나 새롭게 세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결혼이 실패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혼시절에 많이 다투고 싸우는 이유입니다. 배우자가 싫어하고, 고쳐달라고 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은 대부분 고치는 것이 맞습니다. 고집 피우고 버틸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자존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갑"의 위치에 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신혼이혼" 상담 과정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배우자가 나를 무시한다.", "배우자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입니다. RESET의 마인드 없이, 상대방이 나에게 당연히 맞춰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결혼을 한 사례입니다. 가정도 사회생활입니다. 본능과 본성이 활개 치는 야생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본능과 본성을 많이 드러낼수록 향후 이혼 과정에서도 유리할 것이 없습니다.
3. 결혼 이후의 삶에서 "체력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혼식 다음 날부터 부부에게 필요한 것 무엇보다 강인한 체력입니다. 체력이 있어야 살림도 하고, 육아도 합니다. 체력이 있어야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습니다. 체력이 있어야 둘이서 즐거운 일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이 산책을 하고, 같이 등산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피곤하니깐, 혼자 갔다 와"라고 하는 배우자가 있다면, 그 배우자는 체력 관리에 소홀한 것입니다.
피곤할수록 체력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피곤하니깐, 체력을 담아낼 통을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담 사례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출산과 육아 이전에 충분한 체력을 길러야 하는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체력의 한계는 표면화되고, 본능과 본성이 자주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함께 걸으면서, 함께 등산을 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이 배려할 수 있습니다.
여가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가 생활을 함께 할 수 없더라도, 체력 관리는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입니다.
피곤하고 지치고 아픈 몸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산소 운동도 좋지만, 살림과 육아를 버티기 위해서는 근력 운동도 중요합니다.
손목, 어깨, 허리, 무릎을 둘러싸고 있는 근육들이 튼실하다면, 살림과 육아를 잘 해낼 수 있습니다.
4. 신혼이혼보다는 파혼이 100배, 1000배 낫습니다.
"희망회로"를 돌릴 상황이 있고, 그렇지 않을 상황이 있습니다. 로또를 샀다면 당연히 희망회로를 열심히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결혼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거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결혼하면 달라지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결혼하면 달라집니다. 좋은 쪽으로 달라지지 않고 나쁜 쪽으로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숨겨왔던 나의 본능과 본성이 드러나는 경우입니다. 상대방의 희망회로처럼 좋은 쪽으로 달라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결혼하면 어른이 된다."는 말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결혼적령기가 되었다고 해서 결코 스스로 성숙해지거나 인격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희망회로를 돌리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파혼의 부끄러움"과 "이혼의 고통"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파혼의 부끄러움"을 추천합니다. 사실, 준비를 잘하지 못하여 중간에 그만두는 것을 비난하는 것도 어색한 일입니다. 이미 써버린 몇백만 원을 아까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파혼"이라는 용어가 너무 과격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결혼 준비를 멈추는 것에 불과합니다.
결코 설득할 수 없는 순간이 있거나,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면, 결혼 준비를 멈추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도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자꾸 보인다면, 그 결혼 생활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답답함이 계속 쌓여가는 결혼 생활에서 행복을 찾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