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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Sep 18. 2023

그대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입니까?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예측가능성'을 주고 있습니까?


『기안 – 검토 – 검토 - 검토 – 결재(전결)』 가장 일반적인 결재선이다. 이에 따라 공직사회에서도 민간기업에서도 실무자가 초안을 작성한다. 그다음 단계의 관리자들은 실무자에게 수정ㆍ보완지시를 한다. 그에 따라 실무자는 보완하여 최종 결재를 받는다. 따라서 초안이 완성되기 전까지 관리자는 초안을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안을 완성하기 전에 실무자가 관리자에게 질문하는 경우, 대부분의 관리자는 ‘초안을 완성’하여 보고하라고 한다. 실무자의 의문을 실시간으로 해결해 주는 곳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관리자가 실무자의 말만 듣고 그때그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 매우 피곤한 일이기 때문일까.



컨설팅펌 엘리오는 일하는 방식이 매우 달랐다. 팀장도 실무자도 모두 초안을 작성한다.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은 팀장급 매니저가 담당하고, 간단하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부분은 실무자인 컨설턴트가 담당했다(그렇다고 실무자의 업무량이 적지는 않다). 실무자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팀장에게 물어본다. 팀장은 경험과 지식으로 적절한 접근 방향을 제시한다. 반대로 팀장도 자신의 초안 중간본이 괜찮은지 실무자에게 물어본다. 실무자는 솔직하게 코멘트를 한다. 그렇게 초안의 퀄리티가 훨씬 나아져간다.


관리자가 성실하며, 통찰력이 있고, 신뢰를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엘리오에 계시는 임원급, 팀장급 관리자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결코 실무자보다 일을 적게 하지 않는다. 언제나 실시간으로 일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고민하고, 실무자들에게 어려움이 없는지 살핀다. 실무자에게 대책 없이 어려운 일을 던지지 않는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책으로 어렴풋하게 짐작만 했던 ‘리더십’을 현실에서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여전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엘리오의 임원ㆍ팀장이 ‘천사’는 아니다. 나의 초안 슬라이드가 평범하면 실망스럽다고 말하고, 늦으면 늦다고 쪼으기도 했다(나 때문에 숱하게 저녁 약속을 취소한 모 임원께 거듭 사과드린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인격적으로 비아냥거린다거나 실무자의 성과를 가로챈다거나 그런 저급한 모습은 전혀 없었다. 권한을 더 많이 가진 만큼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때때로 실무자가 힘들어하면, 그 실무자를 혼자 두지 않았다. 같이 고민하고 함께 모색했다. 그렇게 같이 나아갔다.

     

지극히 나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엘리오 구성원들의 말은 투명하 직관적이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무슨 의도가 따로 있는지 추측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사례가 필요하다고 하면, 정말로 다른 사례를 찾아서 추가하면 되었다. 무서우리만큼 솔직하고 투명했다. 그러면서도 날카롭지 않았다. 명확하고 세련된 디렉션이었다. 나도 그들의 타고난 성격이 그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리더십이 더 인상적이었다.


위와 같이 꽤 많은 분량을 쓴 이유는, 법조사회와 공직사회에서 ‘리더십’이 유독 약하기 때문이다. 고객의 클레임을 어쏘 변호사에게 맡기고 잠수 타는 파트너 변호사, 개떡같이 말하고 찰떡같이 알아듣길 바라는 관리자, 말하는 의도가 따로 있어 실무자를 테스트하는 경영진, 끝까지 말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알아줘'라고 떼쓰는 높은 분 등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실무자는 직장에서도 '의전'이라는 '육아'를 하고 싶지 않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보였던 성품은 ‘신뢰감’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예측가능성’이다. 한순간의 성과만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신뢰감을 줄 수 없다. 꾸준한 태도와 꾸준한 성과만이 타인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다. 다소 까칠한 점이 있어도, 다소 괴팍한 점이 있어도, 다소 가벼워 보이기만 하여도 상호 간에 신뢰감이 형성되어 있다면 함께 일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누구든 일을 하면서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기를 겪기도 한다. 자신의 과오를 실무자에게 떠넘기는 순간, 그토록 어렵게 쌓아온 신뢰감은 무너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 자신의 실수를 깔끔하게 인정하기 어렵고, 권한과 경력 뒤에 숨기 쉽다. 그렇게 무언가의 뒤에 숨었던 분들은 단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솔직히 기억하고 싶지 않다).


컨설팅펌 엘리오에서 “함께 일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같이 일하게 되었군요!”라는 말은 일종의 인사이자 당부였다. 당신을 신뢰하고 있고, 나도 당신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도 컨설턴트로서 그리고 변호사로서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건강한 기대와 든든한 신뢰감 위에서 전략 컨설팅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예측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신뢰감을 주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생에 과관리자가 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만약 관리자가 된다면 컨설팅펌 엘리오에서 경험했던 리더십을 나 또한 구현해 보고 싶다. 특히, 디렉션(업무지)은 투명하고 명확하게 하고 싶다. 찰떡같이 말해서 찰떡같이 알아듣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1.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보였던 성품은 ‘신뢰감’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예측가능성’이다.

2. 한순간의 성과만으로는 타인에게 신뢰감을 줄 수 없다. 꾸준한 태도와 꾸준한 성과만이 타인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다.

3. “함께 일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같이 일하게 되었군요!”라는 말은 일종의 인사이자 당부였다. 건강한 기대와 든든한 신뢰감 위에서 일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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