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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은 생각보다 일찍 멀어지는 법이다.

by 민법은 조변

2025년 1월 20일 월요일 오후 5시.


영어학원에서 하원한 아들과 빵집에서 오후 간식을 먹는다.

간식을 다 먹은 아빠와 아들은 옆 건물에 있는 피아노학원으로 향한다.


오늘은 피아노학원의 새로운 선생님과 첫 수업을 하는 날이다.

작년 가을 아들은 피아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마음이 따뜻하신 선생님을 만나서 피아노를 배웠다.


아들은 제법 유명한 곡(고양이의 춤 등)도 배웠고, 크리스마스 캐롤도 배웠다.

아들은 태권도학원 대신으로 다니시 시작한 피아노학원에 만족했다.


새로운 피아노 선생님도 잘 가르쳐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잘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빈자리가 아쉽고 고맙기도 하다.


좋은 인연은 생각보다 일찍 멀어지는 법이다.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그래서 가끔 회사 인트라넷에 들어간다.

지난주 토요일, 아주 기쁜 소식을 보았다. 인사발령이었다.


내가 공직사회에 들어온 후, 처음 만났던 과장님의 국장 승진 발령이었다.

마치 내가 승진한 것처럼 기뻤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어떻게 축하 인사를 드려야 할지 고민했다.

(사실 나는 아직 한 번도 승진한 경험이 없지만, 대충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기분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제가 휴직 중이다보니, 기쁜 소식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다해, 진심을 담아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의 공직사회에서 첫 과장님이셨는데, 국장님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치 제가 승진한 것 같이 기뻤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승진을 하시면서 외부 파견을 가시게 되어 직접 뵙고 인사드릴 수 없다는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격무에서 벗어나시어 여유가 있는 일상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말로 저의 기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축하 드립니다. 지난 겨울에 한 번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무쪼록 건강히 잘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3월 초에 복직할 예정입니다.
나중에라도 다시 기쁜 얼굴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국장으로 승진하신 나의 첫 과장님도 매우 평범하신 분이다.

공직사회에서는 매우 평범하신 분이다. 모든 면에서 평범하신 분이다(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역량이다).

나에게는 그 평범하신 분이 나의 첫 과장님이라 특별한 점도 있었다.


첫 과장님은 나를 다소 귀찮아하셨을 수도 있다.

첫 과장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고민이 있을 때, 어려움이 있을 때 불쑥 찾아뵙기도 하고, 밥도 여러 번 얻어먹기도 했었다. 두 번째 이후의 과장님께는 그러지 못했는데 왜 첫 과장님께는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의아하다.


그 적지 않은 귀찮음을 견뎌주셔서 특히 감사한 분이다.

국장님 승진 발령과 함께 외부 파견 발령도 함께 있었다.


3월에 복직 예정인 나에게는 적지 않게 아쉬운 부분이다.

1년쯤 후에는 다시 복귀하시겠지만, 복직 인사를 드리지 못한다는 점만으로도 아쉽긴 하다.


박사학위 과정 길잡이가 되어주신 선배님도 있었다.


2024년 초 박사학위 입학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조언을 해주신 선배가 있었다.

다른 곳에서 경력을 쌓아서 나보다 조금 늦게 회사에 들어오신 대학교 선배였다.


https://brunch.co.kr/@lawschool/153


그 선배님은 나에게 홍영기 교수님의 '법학논문작성법'이라는 책을 소개해주었다.

나는 선배님 덕분에 박사학위 과정을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고, 그 선배님이 소개한 책 덕분에 논문을 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선배님 덕분에 2건의 학술논문 게재가 수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 그 선배님께도 자주 인사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선배님은 작년 여름 다른 부처로 이직을 하셨다.

좋은 인연은 생각보다 일찍 멀어지는 법이다.

국회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신 선배님의 건강과 건투를 빈다.


함께 입사한 사무관 동기 형님도 있었다.


내가 2018년 이 회사에 입사할 때 동기는 3명이었다. 모두 변호사였다.

그중에 동기 형님은 같은 국에서 오래 함께 일했다.


입사 후 3년이 지나자 그 형님과 나는 서로 자리를 맞바꾸면서 같은 국에서 일했다.

일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동기 형님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동기 형님은 나보다 먼저 법학박사 학위과정을 시작했다.

그 형님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박사과정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동기 형님은 나보다 먼저 육아휴직을 썼다.

그 형님 덕분에 나도 육아휴직을 써 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동기 형님은 나보다 먼저 퇴사를 했고,

이번 겨울에 드디어 악명 높기로 유명한 서울대 법학박사 논문이 통과되었다.

진심을 다해 동기 형님의 박사학위를 축하하고 응원한다.


좋은 인연은 생각보다 일찍 멀어지는 법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인연의 끝은 아닌가 보다.


막상 그 사람과 지낼 때는 그 사람이 '좋은 인연'인지 알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관계 중심이 아닌 업무 중심으로 사는 나에게는 특히 그런 것 같다.


조금 멀어지고 나서야 또는 멀어지는 계기가 생기고 나서야...

그 사람이, 그분이 나에게 좋은 인연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멀어짐이 결코 끝은 아닌 점이다.

전화도 있고, 카톡도 있고, 선물 쿠폰도 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이 있음에 감사한다.


오늘 새로운 피아노학원 선생님과 아들은 걸어서 아파트 정문 앞까지 하원을 한다.


지금 시각은 오후 5시 55분.

10분 후에는 아들을 마중하러 정문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번 피아노선생님도 아들에게 좋은 선생님이자 좋은 인연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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