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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때는 완행버스, 복직하니 고속버스.

완행버스 시절이 무척이나 그립다.

by 민법은 조변


1. 육아휴직을 했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을 만나고 늘 함께 먹을 것을 고민했다. 학교에 같이 등교하고, 하교 길에 다시 만나고, 다시 학원 셔틀을 같이 기다리고, 하원 길에 다시 만나고...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2. 회사에 복직을 하고 나니, 아침에 잠깐 아들을 보고 출근을 한다. 일을 하고, 회의를 하고, 허겁지겁 점심 먹고 다시 일하고 보고하고, 결재받고 다시 일하고... 단톡방에 아들이 잘 등원했는지, 잘 하원했는지 보는 것이 전부다.

저녁에 퇴근해서 또 잠깐 보고, 아들을 먼저 재운다.


3. 육아휴직 때는 완행버스를 탄 것 같은 하루였다. 모든 정류장에 다 섰다 다시 출발하는 완행버스처럼, 하루를 수 없이 아들과 함께 한 순간으로 가득 채웠다. 아들과 함께 한 수많은 추억을 만드는 만큼, 하루가 참 느리게 갔었다.


4. 회사에 복직한 이후로는 고속버스를 탄 것 같다. 출발지에서 출발하고 종착지에서만 서는 고속버스처럼 아들과 함께하는 중간중간의 순간이 통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루를 출발하는 아침에 잠깐 아들을 보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에 다시 잠시 아들과 함께 한다.


5. 그래서 고속버스를 탄 지금, 완행버스를 탔던 그때가 참 그립다. 소박했지만 함께 했던 그 순간들로 꽉 찼던 그때가 참 그립다. 2학년이 된 아들은 스스로 잘 크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함께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든 고속버스 같은 삶이 참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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