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하고 여유있는 이 기분을 잊을수 없을 것이다.
다음 주 복직을 앞두고 참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오늘은 평일 낮으로는 당분간 마지막이 될 장을 봤다.
이제 출근을 하면 저녁이나 주말에 장을 보게 될테니...
아들이 좋아하는 딸기를 싱싱장터에서 샀다.
아들이 좋아하는 메론을 코스트코에서 샀다.
아들이 좋아하는 참외를 이마트에서 샀다.
주부가 누리는 몇 안되는 특권 중 하나는 평일 낮에 장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여유있게 주차할 수 있고, 조금 더 여유있게 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 주 주말에 먹을 메뉴를 차분히 고민할 수 있다. 집밥을 고민할 수 있다.
다음 주면 회사에 있을 시간에 나는 이렇게 장을 보고 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카트를 끌고 쿠폰을 먹이며 장을 보고 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딸기와 아내가 좋아하는 사과를 사며, 내가 좋아하는 짱구도 함께 산다.
이제 곧 아들이 영어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오늘로 아들과 함께 하는 파리바게뜨의 10분 데이트는 끝이다.
다음 주부터 아들은 혼자서 빵을 사먹고 알아서 5시 5분에 피아노학원을 가야한다. 혼자서 잘 할 것이다.
수 없이 같이 연습했기 때문에 잘 할 것이다.
아무렴 이제 2학년인데 잘 할 것이다.
걱정도 우려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아쉽고 서운한 이 기분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잘 컸고 잘 해내고 있는 아들이 있는데도, 이 헛헛한 이 기분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꾹꾹 참으려했지만, 꾹꾹 눌러 참으려했건만...
마지막 과일 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회사로 돌아가기 싫은 그런 유치한 생각은 결코 아니다.
아들과 함께 했던 그 아득하고 행복했던 순간이 이제 과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할 것이다.
앞으로도 잘 할 것이다.
아들도, 아빠도, 엄마도 다 잘 적응하고 잘 할 것이다.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지금을 기억하며 지금처럼 행복하게 잘 지낼 것이다.
아들아, 고맙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