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친절한 사람은 없다.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 있다.
8년 간의 법제처 라이프를 무탈하게,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퇴직을 2주 앞두고도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부서(과)에는 실무자가 저 밖에 없기 때문에,
2월 말까지 반드시 끝내야 하는 업무는 모두 완료하고 가야 합니다.
법제처 이전의 회사에서는 "반드시" 끝내야 하는 업무가 많지 않았습니다만,
법제처 법제국의 경우 "국무회의", "차관회의", "법률 시행일" 등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자가 있고,
그 일자를 역산하여 모든 업무가 이루어집니다.
A 법률이 3월 3일 시행되는데,
A 법률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그 날짜에 맞춰서 시행되지 못하면,
그 불이익은 전 국민에게 미치기 때문에 미룰 수 없습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합니다.
하지 않을 수 없는 업무가 아직도 여전히 꽤 남아 있습니다.
법제처 법제국의 사무관 라이프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조사무관님, 언제까지 출근이세요?"
"저는 2월 27일까지 출근합니다. 그런데 그전에 연가를 좀 씁니다."
"연가는 모르겠고, 암튼 메일 보냈으니깐 읽어보고 처리해 주세요."
네, 맞습니다. 저는 2월 27일까지 법제처에 출근합니다.
그런데 그전에 저축되어 있는 연가를 쓰면서 경북대학교 신임교원 워크숍에 참석을 합니다.
설 연휴에 이어서 딱 하루 더 연가를 쓰면서 첫 학기 강의자료도 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3월 초까지, 3월 중순까지, 3월 말까지 기한인 업무임에도
제가 2월 말까지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가라는 취지의 메일을 요즘 자주 받습니다.
그리고 저의 연가 계획을 무시하고 그냥 하라고 고집 피우시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저에게 직접 얘기하지 않고, 과장님이나 국장님께만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법제처에서 반드시 제가 해야 하는 업무는 없습니다.
애초에 저만이 할 수 있는 업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그런 업무가 있어도 안됩니다.
그런데 높은 분들께 제가 할 것이라 보고가 되었다고 제가 꼭 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께 저의 상황을 설명드리고, 다른 대직자가 필요하다고 양해를 부탁드리면, 불 같이 화를 내십니다.
그래서 요즘 출근하는 날마다 제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질 때가 자주 있습니다.
오히려 저녁에, 주말에 아무도 없을 때 밀린 업무를 처리할 때가 마음이 더 편합니다.
저는 아직 여전히 법제처에서의 8년이 매우 가치 있었다고,
그 8년을 보람 있고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음에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행정입법의 현장, 행정법령 해석의 현장, 행정기본법 제정의 과정 등을 두루 경험할 수 있었음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조금이나마 역할을 할 수 있었음에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월 말까지 여전히 친절한 조사무관으로 지내기에는 엄청난 용기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친절하지 않은 분들을 상대로 여전히 친절하고 매너 있는 조사무관으로 지내기에는 참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왜 저여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으면서,
무조건 제가 2월 말까지 다 해야 한다고 반복하시는 분들께도 친절하고 싶은데 참 쉽지 않습니다.
8년 전 제가 처음 출근할 때의 법제처도 이러했을까 의아한 부분도 있습니다.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꼭 제가 해야 하는 업무에 집중하고,
없을 수도 있는 후임자를 위하여 인수인계서를 잘 써놓고,
다음 학기 강의자료를 잘 준비하는데 저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려고 합니다.
회사는 "기한"에 맞춰서 "일"을 하는 곳입니다.
지금 맡은 일을 잘 마무리하고, 다음 회사의 일을 잘 준비하는데 집중하겠습니다.
(직급과 권한으로 고집 피우시는 분들께는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양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