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든 거인
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 [출처: Google Arts & Culture]
오늘 우리가 마주할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입니다. 캔버스 속 고흐는 굳게 다문 입술과 붕대로 감싼 귀를 하고 우리를 응시합니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이지만, 붕대 아래 감춰진 고통과, 세상과의 단절을 암시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깊은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는 많은 이들 역시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오늘은 우리가 마주한 제도의 현실이, 어쩌면 그들의 닫힌 귀와 굳게 다문 입술을 더욱 굳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그림의 제목을 붙였지만
안녕하세요, '노동법 도슨트' 로스파파(LawsPapa)입니다.
법은 지난날 이름 없던 고통에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제목을 붙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제목을 붙이는 것만으로 그림 속 상처가 아물고, 닫힌 귀가 열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법이 마련된 후에도 많은 피해자가 여전히 침묵하거나, 용기를 내어 '사건'을 신고해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림을 그릴 '붓'이 너무나도 거대한 존재의 손에 쥐여 있기 때문입니다.
'붓'을 든 거인
우리 사회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는 '사용자 보호조치 의무'를 핵심으로 합니다. 법은 회사라는 거대한 캔버스를 운영하는 사용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그림을 그릴 '붓'을 온전히 맡겼습니다. 즉,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용자가 직접 조사하고, 가해자를 징계하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는 직장에서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보면 일면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구조적인 한계점도 숨겨져 있습니다. 이 '붓'을 든 거인은 '회사의 이익'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먼저 그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기에,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 '거인' 스스로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법이 건네준 붓은 공정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거인의 손에 쥐어져 제멋대로 움직이는 붓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감싸 쥔 고흐처럼, 피해자는 제도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홀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그려지지 않는 그림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용기를 내어 문제를 제기했지만, 회사의 미온적인 태도와 이해관계에 얽힌 조사를 겪으면, 피해자는 오히려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닌가'라는 자책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법은 분명 그림을 그리라 했지만, 정작 필요한 붓질은 누락되고, 그림은 흐릿해져 버릴 수 있습니다. 이는 법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낳은 슬픈 그림입니다.
우리만의 색을 찾아가는 여정
다음 해설에서는 이처럼 '그려지지 않는 그림'을 마주한 피해자가 어떻게 자신의 캔버스에 다시 색을 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이 거인의 붓이 아닌, 우리만의 색을 찾아갈 방법이 남아있습니다.
노동법 도슨트 (공인노무사, 노동법학 석사)
이 글은 노동법 일반의 내용과 그에 대한 개인적 사유를 담은 것입니다. 특정한 사안에 대한 법률적 조언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개별적, 구체적 상황에 대한 법률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전문가와 별도로 상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