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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훈일 변호사 Sep 17. 2023

파기환송된다고 꼭 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공정한 재판을 확보하고 부당한 재판을 시정할 수 있도록, 한 사건에 대하여 세 번의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이것을 3심제라고 합니다. 


즉, 1심 지방법원에서 시작하여 2심 고등법원 또는 지방법원 본원합의부를 거쳐 3심 대법원의 재판을 받는 순서로 진행하는데, 이처럼 법원 간의 상하관계를 두어 상급법원의 재판을 다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파기하는 경우 환송 또는 이송을 하는 것이 원칙인데, 파기환송은 원심법원에게 사건을 다시 심판하라고 원심법원으로 환송하는 것을 말하고, 파기이송은 원심법원과 동등한 다른 법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환송받은 원심법원은 상고법원이 파기한 사실상 및 법률상 판단에 따라야 하는데, 이를 기속력이라고 합니다. 이는, 환송심이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반하는 판결을 계속 고집하면 사건이 환송심과 대법원 사이에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게 되므로, 심급제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효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속력이 항상 모든 범위에 미치는 것은 아닌데, 환송심에서 상고법원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아 심리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주장·입증이 새로이 제출되거나 또는 보강되어 상고법원의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긴 때에는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법률적 판단에 기속력이 미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다고 반드시 진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실제 수행했던 사건 또한 2심에서 승소하였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후 찾아오셨던 사건이었습니다.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9조 제4항에 따른 여신금융기관의 연체이자율에 관한 규정에 따라 여신금융기관이 연체가산이자율을 인하하었음에도, 여신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채권을 양수한 대부업체가 대출계약서에 기재된 기존 연체가산이자율을 그대로 주장하며 배당요구를 하였기 때문에 문제 되었습니다.


기존 소송경과는, 문제 되었던 고시가 기존 계약자에게도 소급하여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가 주로 문제 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대법원이 이미 명시적으로 소급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환송심에서 패소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주장·입증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흔히 생각할 수 있었던 채무의 포기 또는 면제로 법리 구성을 하는 것은, 채권이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하고, 상대방에게 도달하여야 효력이 발생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여신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장래에 발생하는 지연이자에 대하여 별도의 개별적인 통지 없이 연체가산이자율을 인하한 이 사건의 사실관계에 포섭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이와 다른 법리 구성도 필요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 및 이에 대비한 입증전략을 수임단계부터 명확하게 설명드렸고, 신속하게 이에 대한 주장을 담은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한편,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금융기관에 대한 사실조회신청까지 같이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심리한 환송심 재판부는 저희 측 주장의 이유 있음을 인정하여 화해권고결정을 하였고, 결국 파기환송되어 패소할 수도 있었던 사건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파기환송되었다고, 꼭 포기하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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