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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희 La Wun Choi Jan 04. 2024

길 없는 길

아세안의 숨겨진 보석 미얀마 전문가되기 

들어가며: 

미얀마 전문가를 꿈꾸며
미얀마 양곤대학교 박사과정에서부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석사 그리고 또 다른 나 만나기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라는 문장은 파친코 소설의 나오는 첫 문장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의 첫 문장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나에게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관한 회유의 말을 하기도 한다. ‘외국인이니깐 미얀마 쿠데타가 무슨 상관이야. 가서 학위 마무리 잘하면 훗날 미얀마 사람들도 이해해줄 거야.’라며 미얀마 쿠데타 상황 속에서 다시 양곤대 학위를 진행하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미얀마는 단순히 나에게 ‘학위’를 위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교수님들, 친구들 그리고 미얀마 가족들이 있는 소중한 나의 두 번째 고향이다. 미얀마 양곤 우리집 앞에는 미얀마 국민음식 중의 하나인 ‘모힝가’를 파는 맛집이 있었다. 아침마다 그곳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주인 아저씨는 늘 해맑은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모힝가 가게를 가로질러 갔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그 아저씨는 NLD 티셔츠를 입고 ‘Democracy’를 외치며, 민주화된 미얀마가 살기 너무 좋다고 말하며 인사를 건네던 분이었다.
 

 약 53년간의 독재에 맞서 싸워 민주화를 이뤄낸 그들에게 ‘민주화’는 어느 나라보다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단어이다. 두 번째로 나는 ‘민주화’라는 진통을 겪고 어렵게 민주주의를 이룬 대한민국 국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비단 우리나라 역사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와 같은 역사를 겪는 민족에게, 어려운 시기를 먼저 벗어난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들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훗날 역사가 우리를 저버리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쿠데타가 발생하자마자 CDM(시민불복종운동) 양곤대 주동자로 분류되어 감옥에 잡혀갔던 우리과 교수님은 이번년도 초에 석방되었다. 미얀마 민주정부 시기 스타트업 대표를 꿈꾸던 나의 친구는 시민군에 합류하여 국경지대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군부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미얀마 NLD 연구소 룸메이트 언니들도 안전한 곳에서 숨어서 미얀마 NUG(국민통합정부)의 행정을 도우며 도피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대항하여 용기있게 저항하여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오늘도 어디선가 미얀마 국경지역에서는 군부의 포탄이 떨어져 이유도 없이 사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국의 군대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들이 오히려 공격을 받고 피난민이 되어 자신의 주거지를 잃고 있다. ‘미얀마 전문가’를 꿈꾸며 호기롭게 떠난 양곤대 유학생활이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해 나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50년이 넘는 군부정권을 종식하고 민주화를 이룩했던 미얀마가 다시 권위주의 정부로 돌아간 이유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간혹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관해 인터뷰가 들어왔다. 미얀마 사정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지만 ‘민주주의’,‘쿠데타’등 정치적인 지식이 부족했던 나는 답변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직후 1년 동안은 미얀마 유학생 친구들과 단체를 결성하여 한국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알리는 공연·간담회·사진전등을 함께 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여러 민주화 활동을 하면서 ‘민주화’와 ‘권위주의’과정에 관한 궁금증이 지속되었고 한국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석사를 다시 시작하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공부를 해보니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아세안의 국가 중 하나인 미얀마는 일반적인 정치학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표면적인 쿠데타에 관한 현상은 설명할 수 있지만 다른 국가들과의 비교를 통한 미얀마 쿠데타에 관한 일반화를 도출하는 것은 사실의 10분의 1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열일곱살 때 꿈 꾼 단 한가지 목표인 ' 미얀마 전문가 되기' 라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행동했고 현실로 만들어 가는 것이 행복이자 삶의 원동력이었다. 미얀마 민주화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고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다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 한 쿠데타가 발생했다. 인생을 살면서 단 한번도 삶의 방향을 잃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미얀마 쿠데타'라는 사건은 삶의 방향을 잃게 하기 충분했다. 아직도 삶의 파도의 너울에 돛대 없는 배처럼 풍랑하는 것 같다.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나의 삶이 '미얀마 전문가'가 되든 다른 길로 풀리던 내가 미얀마 유학생활을 준비한 10년이라는 세월, 미얀마 유학생활을 했던 2년 반이라는 세월동안 겪은 일련의 사건들과 사람들은 나의 인생길을 걸어가는데 있어 소중한 자산이자 자양분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도전의 등불이 되고 싶다. 아무도 떠나지 않았던 양곤대 박사과정 유학의 길은 도전과 불확실성에서 확실성을 찾는 길의 연속이었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유학을 떠났지만 ‘미얀마 쿠데타’라는 장벽에 의해 다시 길은 길 없는 길이 되어버렸다. ‘도전’하는 길은 쉽지 않다. 끝없는 인내와 불확실성에 자신의 미래를 던지는 것과도 같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지금 이 과정을 해내야지만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묵묵하게 걸어가고 있다. 동남아 진출 준비를 위해 미얀마에서 거침없이 도전했던 청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글을 클릭한 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여러분이 어떤 일로 동남아시아 진출을 꿈꾸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먼저 길을 개척했던 사람으로 이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Never Stop Dreaming’그리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거침없이 깨져라’.


그리고 혹시 삶에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의 힘과 조건으로 인해 무너지거나 쓰러진 경험이 있는분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통해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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