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내 책장 한 구석에는 형형색색의 공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국민학교 1학년 시절부터 썼던 나의 일기장들이다. 집을 이사할 때마다, 이 먼지만 가득 쌓여가는 애물단지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곤 했다. 그렇게 매번 버릴까 말까만 고민하다가,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거니 하고 버리지 못한 채 계속 책장 한편에 쌓아둔 것이 어느덧 20년이 넘게 지나버렸다.
얼마 전 침대에 누워있다가 우연히 고개를 돌렸는데, 책장 속 일기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 예전 내 일기장들을 모두 꺼내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내 나이가 한 자릿수이던 그때 그 시절, 일기장 속의 난 참 많은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경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IMF'를 걱정하였으며, 어린 나이에도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였고, 내 미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곤 했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고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꽤 진지했다.
숙제로 일기를 써야 했던 시절부터 참 많은 시간이 지났다.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 그렇게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었다. 밤늦게까지 TV를 보더라도 날 혼내는 사람이 없으며, 먹기 싫은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이제는 아침마다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른이 되었어도 난 여전히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어떤 고민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시작한 것이며, 또 어떤 고민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해결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면 모든 고민이 사라지고 마음대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내 기대는 아무래도 허상이었나 보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며, 시간의 빠름을 느낀다. 빠르게 다가올 먼 미래에 지금 이 순간을 돌이켜보았을 때,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고, 또 매 순간 무엇에 중점을 두고 서낵을 해야 할지를 끝없이 고민한다. 정답이 없는 고민이기에 고민은 끝이 없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언제나 미련이 남곤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을 떠올리기로 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나는 나로서 남아있으니, 과거의 내게서 답을 찾아보고 싶다. 그 시절의 기억을 그냥 잊고 살기에는 너무 아깝기도 하고 말이다. 책장 한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기에는 내게 너무 소중한 기억들이다. 어쩌면 그 속에서 내가 잊고 있던 내 삶의 이정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 인천에 있는 '국민학교'에 재학 중이던 어린이의 일기를 통해 현재의 내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그때는 알았지만 지금은 잊은 채 살고 있던, 그런 소중한 기억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의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