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혜정 변호사 Mar 25. 2020

성폭력 피해자로 조사를 받게 된다면

참고인조사 대비하기

성폭력 피해 신고를 하거나 고소를 하면,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폭력 피해자 통합지원센터인 해바라기센터에서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하고요.


가해자가 처벌받기를 원해 피해사실을 신고했지만, 피해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사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어떤 절차에 따라 조사가 진행되는지 막막할 텐데요.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형사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간략하게 설명드리면, 형사절차는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처벌되는지를 보여주는데요. 형사절차는 수사단계와 재판단계로 이루어지고, 대체로 경찰→검찰→법원으로 사건이 진행됩니다.


형사절차의 전체적인 흐름



피해자 조사가 갖는 의미


피해자 조사는 범죄의 혐의 유무를 밝히기 위해 수사기관이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에 해당합니다. 보통 피해자가 경찰에 피해사실을 신고하거나 고소하면 경찰에서 조사를 받게 되는데요. 경찰에서의 수사가 마무리되어 사건을 넘겨받은(송치) 검찰이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여기면, 피해자는 검찰에 가서 또 조사를 받게 됩니다.


가해자가 범죄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경찰에서 한번 조사를 받으면 되지만,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말이 다르니 이에 대한 조사가 몇 번에 걸쳐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복된 조사는 피해자를 매우 힘들게 하죠.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 둘만이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게 대부분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범행 자체를 부인하기도 합니다. 증거가 없다고 여기는 거죠. 피해자는 CCTV 같은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걱정합니다.


피해자의 진술이 곧 증거!


피해자의 진술, 말은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가 되기도 하고, 유일한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진술해야 하나


사건을 기억하기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겠지만,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 합니다.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유력한 증거가 될 수도 있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진술은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1. 피해사실, 피해 전후의 상황 등을 사실대로 정확하게 진술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트라우마로 인해 기억이 뒤죽박죽 된다고 해요. 힘들지만 피해사실, 피해 전후의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물론 수사기관에서 자세하게 물어볼 테지만요. 수사관의 물음에 추측해서 이야기하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을 과장해서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모르는 사실은 모른다고,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사실대로 진술해야 합니다.



2. 모순 없이 일관되게 진술


피해사실을 반복해서 진술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인데요. 같은 질문에 매번 다르게 대답을 한다면 수사기관은 의심을 하게 됩니다. 사실을 말한 게 아니구나 하고요. 물론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 다르게 말하는 건 괜찮지만, 사건의 핵심과 같은 중요한 부분을 계속 다르게 말한다면 의심을 하겠죠.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즉, 피해자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죠. 이때 진술의 일관성이 신빙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조사를 받으면서 메모를 하는 것이 가능하니, 기억 환기용으로 활용하면 좋습니다.



피해자 등의 진술은 그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또한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아니 된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6도5407 판결 참조).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참조).



3. 조사를 마친 후에는 조서의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진술을 기록한 문서를 '진술조서'라고 하는데요. 조사가 끝나면 수사관이 진술조서를 읽어보라고 건넵니다.


이때 조서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내가 한 말이 조서에 제대로 담겨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즉, 중요한 사실이 빠져 있는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등을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수사관에게 수정을 요청해야 합니다. 더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추가로 작성을 해야 하고요.



4. 불편한 사항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시정을 요청


피해자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질문을 받거나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 합의를 종용하는 등의 2차 피해를 받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에는 대부분 여성 성폭력 범죄 전담조사관이 조사하도록 하고 있지만, 남성 조사관에게 조사를 받는 게 불편하다면 조사관의 교체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수사절차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


1. 인적 사항의 기재 생략


수사기관은 조서 등을 작성할 때,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의 성명·연령·주소·직업 등 인적 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의 기재를 생략할 수 있고, 이 경우 신원관리카드에 위 인적사항을 적도록 하고 있습니다. 조서 등에 서명은 가명으로, 간인 및 날인은 무인으로 합니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기 전에 이러한 조치가 있음을 미리 알려주고, 조치를 신청할 것인지를 물어볼 텐데요. 수사 단계부터 인적사항을 보호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아는 사이거나 피해자의 주소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조치를 신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신뢰관계인 동석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할 때, 수사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등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해자와 신뢰관계인을 동석하게 하여야 합니다. 신뢰관계인은 피해자의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 가족, 동거인, 고용주, 변호사, 그 밖에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친구, 선후배, 직장동료, 상담소 직원 등)입니다.



3.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


성폭력 피해의 경우 국선변호사의 선임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피해신고나 고소를 할 때 수사기관에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가 있음을 알려주고, 선임 여부를 물어보는데요. 별도로 사선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면, 혼자서 대응하기보다는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하셨으면 합니다.



이외에도 가해자 등에게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신변안전조치(일정기간 특정시설 보호, 일정기간 신변경호, 참고인 또는 증인 출석·귀가시 동행, 주거지 주기적 순찰 등)를 요청할 수 있으며, 가해자 등이 합의 등을 위하여 피해자를 계속 찾아오는 등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가해자 등으로부터의 접근금지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 무고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