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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변호사 Feb 02. 2021

꼭 새벽 기상이 아니어도 괜찮다

※ 이 글은 올해 말 출간 예정인 《변호사의 글쓰기 습관》(가제)의 일부 내용입니다.



과거의 나는 막연히 성공하고 싶어 했다.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셨지만 가난을 벗어날 정도로 벌이가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포기해야 할 때면 자존심도 상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공부에서만큼은 달랐다. 공부 잘한다는 소리가 듣기 좋았고, 내 배경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당시에 나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길은 공부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했지만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대학이라는 간판은 내게 또다시 열등감을 가져다주었다. 학교생활도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나는 나를 채워줄 더 높은 목표가 필요했다. 남들이 나를 인정해 줄 목표,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사법 시험이었다.


아버지는 제법 공부를 잘하는 딸에게 늘 판검사가 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내 꿈은 차츰 ‘법조인’으로 자리를 굳혀갔다. 가난한 고학생이 고시에 합격해서 성공했다는 뉴스 기사를 접하는 게 흔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싶었다.


명문대 출신도 합격하기 어려운 사법 시험에 만약 내가 합격한다면 나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조금이나마 상쇄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내가 법조인의 꿈을 가지게 된 건 사회 정의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에 매달린 끝에 나는 결국 사법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만 하면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로만 알았지만 현실은 또 그렇지가 못했다. 산 넘어 산이라고 사법연수원에서의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판검사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더 좋은 로펌에 가기 위해서는 또 엄청난 양을 공부해야 했고, 동료들과의 경쟁도 무척 버겁게 느껴졌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받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했다. 원하는 고시에 합격하고 법조인이 될 자격을 얻었지만 내 안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라는 일은 타인을 대변하는 일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온 의뢰인의 말을 듣는 것에서부터 변호사의 일은 시작된다. “변호사님, 억울하고 답답해요.” 내가 의뢰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변호사를 찾는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 벅찬 일을 변호사가 대신해서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마지막으로 의지할 사람이 변호사인 셈이다. 그래서 변호사는 늘 '마지막'이라는 책임감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일하고 싶지만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사건이나 의뢰인에 같이 감정이 이입되어 내일처럼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사건을 해결하다 보면 그동안 의뢰인이 살아온 삶의 단편을 엿볼 때도 있고,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안타까울 때도 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를 대리할 때는 그들의 고통에 가슴 아프고 뻔뻔한 가해자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소진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참 많다.


고용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엔 나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한 사건도 맡아야 했다. 변호사인 나조차 의뢰인의 이야기에 설득되지 않고, 편법을 써서라도 그저 문제 해결만 바라는 의뢰인들을 만날 때면 ‘내가 이러려고 변호사가 됐나’하는 자괴감마저 들 때도 있었다. 안 될 사건도 되게 만들어 달라고 찾아오는 의뢰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과에 따르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지만 법률 소송에 있어서 만큼은 이런 게 통하지 않는다.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으니 소송 하기를 만류한 사건에서도 결국 패소를 하게 되면 의뢰인은 “당신이 대체 한 일이 뭐냐"라는 말을 버럭 내뱉기도 한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었고, 더 말리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무거운 책임감은 나를 힘들게 했고, 내 억울함과 답답함은 풀지 못한 채 쌓여만 갔다. 계속 그렇게 일만 하다 보니 이대로는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에 매몰되지 않고 버티기 위해 나를 견고히 해야 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나만의 일에 대한 가치와 기준을 세워야 했고, 마음을 단단히 해야 했다.


몰려드는 허탈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쓴 자기계발 서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들의 공통적인 생활 습관은 무엇인지에 관심이 갔다. 더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존경받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신뢰할만한 변호사가 되기 위해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따라 한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때마침 책 『미라클 모닝』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 단순함에 끌려 새벽 기상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밤 12시 가까이에 잠드는 데 익숙해져 있던 내가 새벽 기상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고 밤 시간을 포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 기상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스마트폰 알람이 10분마다 울리게도 해보고, 새벽 기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 가입해서 사진 인증을 해보기도 했다. 플래너에는 새벽 5시 기상에 성공한 날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한 달 몇 번 기상에 성공했는지 스스로 체크하며 의지를 불태웠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했고, 새벽에 일어나지 못할 때는 아침 시간을 망쳤다는 생각에 괴롭기도 했다. 이때는 그냥 일어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미션이었다. 의뢰인과의 상담이 많거나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등 외부 활동으로 한창 바쁠 때는 서면(書面)을 쓰기 위해 야근을 해야 했다. 그럴 때도 새벽 기상을 할 수 없었다. 초임 변호사 시절이라 일도 많았지만 전문 지식을 쌓기 위한 공부도 해야 했기에 잠자는 시간은 늘 부족했다. 나는 점점 새벽 기상과는 거리가 멀어져 갔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는 새벽 기상은 이제 완전히 딴 나라의 일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서는 계속해서 새벽 기상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그토록 새벽에 일어나고 싶은 건지, 거듭된 실패에도 왜 꼭 일어나야 한다고 다짐했는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되었다.


“새벽 기상을 했을 때 내가 느꼈던 뿌듯함은 새벽 기상 자체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새벽에 보냈던 시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가 실은 더 중요했다는 것을.”


요즘 2030세대 사이에 ‘미라클 모닝’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 새벽 기상을 하는 이유로 자존감 상승을 꼽는다. 그리고 남들이 자는 시간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났다는 데서 오는 성취감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열심히 살아가는 나’라는 자존감 회복으로 연결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일찍 일어난 시간이 또 다른 생산성 있는 일로 바뀌지 않는다면 새벽 기상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많은 책들이 새벽 기상을 강조하다 보니 그것만 달성하면 무언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오해를 낳는데, 진짜 새벽 기상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새벽 자체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일어난 그 시간에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해 자신만의 루틴을 만드는 걸 더욱 중요하게 말한다.


나는 주로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로 시간을 썼다. 새벽에 일어나지 못할 때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못 지킨 것보다 책을 읽고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일이 피곤한 날에는 밤 10시에 잠을 자도 다음날 일어나지 못할 때가 있었고, 아이가 새벽에 일어나기라도 하면 내 시간은 없어지기도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기 시작하자 나는 차라리 잠들기 전에 그 시간을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꼭 새벽일 이유는 없었다. 이 시간만 확보된다면 그게 아침이든 저녁이든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은 저녁 시간이었고, 나는 새벽 기상 대신 밤 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쓰기로 했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쓴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돌아보며 순간순간 밀려왔던 감정과 생각을 다시 떠올리며 일기를 쓰기도 하고, 내일 있을 일을 위한 플래너를 작성하기도 한다. 새벽 대신 밤 시간을 보내는 나만의 루틴이다. 나는 이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썼다.


지금도 이 루틴은 잘 지켜져오고 있다. 이 시간을 이용해서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정보성 콘텐츠와 일상을 담은 글을 쓰고 이를 블로그에 올리는 일이다. 정보성 콘텐츠로 내가 다루는 분야의 변호 업무와 관련해서 알아두면 좋은 법 지식이나 정보 등을 정리해서 올린다. 일상 글은 따로 얘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렇게 하루에 한 시간을 활용하면 일주일에 일곱 시간 정도가 생기고 그러면 일주일에 한두 개 정도의 글을 블로그에 올릴 수가 있다. 이렇게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을 보내면 하루가 풍성해지는 충만감이 온다. 정신없이 보냈던 하루가 이때만큼은 차분해지고 특별해지는 시간이 된다.


나는 일주일 간 내가 저녁에 했던 활동을 <주간 문혜정>이란 이름으로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다. 블로그를 본 사람들은 나에게 열심히 산다고 말하기도 하고, 내가 읽은 책을 같이 구해 읽기도 하고, 나처럼 일주일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댓글들이 달릴 때면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게 마냥 신기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준다.


이제는 성공하는 삶이 아닌 성장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의 나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더 높은 목표만을 추구하느라 정작 나를 돌아보는 데 소홀했지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부터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하루가 더욱 충만해짐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글을 쓰고 기록을 하면서부터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특별함으로 다가온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이 시간을 통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나만의 가치 기준을 세워나가는 중이다. 현재진행형으로 표현한 것은 나다움을 찾는 과정은 한 번의 시도로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 기상을 강조하는 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힘든 만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의미로 새벽 기상을 해석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시작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쏟아지는 아침잠을 이기고 내가 일어났다는 데서 오는 희열이 아니라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을 얼마나 가졌느냐에 달려있다. 그게 새벽인지 한밤중인지는 중요치가 않다. 30분이라도 그 시간을 만들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 무엇은 오롯이 자기를 위한 시간이어야 한다. 분명 각자에게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꼭 새벽 기상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꼭 독서나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하든 상관은 없겠지만 그 시간이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성공한다거나 시작이 반이라는 문구에 현혹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위한 시간으로 새벽이 아닌 밤을 선택했고 그렇게 새벽 기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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