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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변호사 Apr 17. 2021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 이 글은 올해 말 출간 예정인 《변호사의 글쓰기 습관》(가제)의 일부 내용입니다.



“자기도 글을 써봐.”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나는 남편이 글을 썼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끔 글쓰기를 권한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글쓰기나 블로그를 해보라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다. 진짜 시간이 없을까. 내가 글을 쓰는 시간에 남편은 다른 취미 활동을 한다. 결국엔 시간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의 정도, 우선순위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 때문에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한다.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관리한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를 적용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나는 아이젠하워의 시간 매트릭스를 참고해서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이미 여러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시간 관리 방법 중 하나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일의 긴급도와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분류하는 방법이다. 즉, 긴급하고 중요한 일은 지금 당장 처리하고,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은 계획을 세워서 시간을 확보한다. 또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은 줄이거나 위임을 한다.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로 아예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가급적 줄이도록 노력한다. 대략 이런 식으로 일의 순서를 결정한다. 아래는 내 업무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다.



내가 쓰는 글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변호사 일과 직접 관련된 서면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블로그에 올릴 요량으로 정보성 글을 쓰는 일이다. 둘 다 법과 관련된 글쓰기이지만 둘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서면을 쓰는 일이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면, 정보성 글을 쓰는 일은 긴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일이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은 누구나 가장 빠르게 처리한다. 이 시간마저 확보하지 못한다면 일을 줄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내가 정보성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건 수임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어 장기적으로 보고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일 역시 긴급한 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지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의 김선영 작가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으면 ‘일상 조절’을 해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글쓰기에 보탬이 되는 독서, 메모, 산책, 운동, 새로운 경험은 늘리고, 방해가 되는 TV나 유튜브 시청, 스마트폰 사용, 음주는 줄이라고 했다. 나 또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영상을 멀리하게 됐다. 글을 쓰려면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충분한 생각이 익어야 자연스런 글이 나온다. 생각거리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는데, 영상이나 스마트폰을 계속해서 쓰다 보면 생각을 하는 대신 영상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만 자꾸 집중하게 된다. 유튜브 시청은 하루에 30분만 한다든지,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게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나는 매년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 해를 위한 연간계획을 세운다. 연간계획부터 월간계획, 주간계획, 일일계획은 모두 나의 사명과 비전을 토대로 작성한다. 나의 사명과 비전은 1)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2) 배움과 성장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소통하는 자기 경영인, 3) 의뢰인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을 제시하는 법조인이다. 사명과 비전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일과 가정의 균형’ 역시 내가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나만의 기준을 갖고 있다면 아무리 할 일이 많다고 하더라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된다. 낭비하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나는 업무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나와 합이 맞는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어서 일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상담 예약을 이메일로 받는 것이다. 급하니까 잠깐만 전화로 상담해달라는 분들과 이야기하다가 훌쩍 한 시간을 넘긴 경우가 허다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해진 시간 이외에는 가급적 상담을 하지 않고 있다. 사무실로 바로 전화해서 “지금 상담되나요”라고 물으면 나는 힘들다고 한다. 일부러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내 일정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든 상담은 사무장이나 직원을 통하지 않고 내가 직접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상담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수박 겉핥기식의 상담이나 사건 수임만을 목적으로 하는 상담은 지양한다. 제대로 된 법률 가이드를 의뢰인에게 제시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꼼꼼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때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할지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할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나의 경우 전문 분야의 변호사가 될지 그렇지 않고 두루두루 사건을 맡을 수 있는 변호사가 될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나는 잘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현재 주로 맡고 있는 사건은 이혼과 성폭력 분야이다. 여성 의뢰인들 중에는 여자 변호사를 찾는 이들이 있고 그러다 보니 이 분야의 사건을 맡게 되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같은 여성으로서 의뢰인을 공감하게 되고 그들의 편에 서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한 의뢰인은 사건이 끝난 후에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는데 언니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내게 해 준 적이 있다. 물론 사건의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그렇게 칭찬의 말을 해준 것이겠지만 최선을 다한 내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 참 고마웠다. 요즘에는 의뢰인들도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있고 관련 사건을 많이 다룬 변호사를 찾는다. 그래서 변호사로 다양한 사건을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하고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결국 시간을 아끼고 절약하며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한다.


시간관리를 돕는 도구, 바인더


다이어리라고 불리는 수첩을 사용한 건 중학교 때부터이다. 다이어리 꾸미기가 한창 유행했고, 손 글씨 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취미처럼 하루 일정을 기록하고 준비물을 챙기곤 했다. 그런데 이 습관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중간중간 플래너의 종류만 바뀌었을 뿐 플래너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플래너는 ‘바인더’이다. 나는 업무와 일상을 관리하는 도구로 ‘바인더’를 사용하고 있다. 내가 쓰는 바인더는 문구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커버에 속지를 넣다 뺐다 갈 수 있는 바인더다. 속지를 구할 수 있어야 하고, 속지 구멍과 바인드의 고리가 잘 맞아야 계속해서 쓸 수 있다. 메모할 수 있는 페이지나 형식이 정해서 나오는 다이어리식의 수첩은 불필요한 내용도 있고, 더 필요한 부분을 추가할 수 없는 단점이 있지만 바인더는 속지를 내 마음대로 바꾸고 필요한 부분을 넣고 빼기가 용이하다. 바인더는 속지를 고리로 엮은 형태로 3공, 6공, 20공의 바인더마다 고리의 개수가 다르다. 나는 A5크기의 20공 바인더를 쓴다. 예전에는 바인더 속지를 직접 만들기도 했지만 현재는 플랜커스라는 회사에서 만든 속지를 주로 쓴다. 내가 원하는 속지에 가장 가까운 형태여서 만족하면서 쓰고 있다.


변호사의 업무는 의뢰인 상담, 서면 작성, 재판 출석, 경찰이나 검찰 조사 입회, 각종 위원회 활동, 강의 등이 있다. 의뢰인과 상담을 하거나 서면을 쓰는 일 이외에는 모두 외부 활동이다. 나는 현재 기일(재판이 열리는 날) 관리부터 의뢰인과 약속을 잡는 것까지도 모두 직접 하고 있다. 새로운 일정이 생기면 먼저 네이버 캘린더에 입력하고 바인더에도 또 적는다. 두 번의 과정을 거치면 번거롭지 않느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습관처럼 하고 있는 일이라 그렇지는 않다. 두 번씩 적는 이유는 각각의 쓰임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에 더 빠르게 일정이나 정보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네이버 캘린더를 쓰게 되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내 일정을 바로바로 파악할 수 있고 알림 설정을 해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pc에서도 일정을 동기화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는 pc버전을 통해 일정을 확인한다. 바인더의 경우 전체 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내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한눈에 파악할 수가 있다. 그리고 집에서 업무를 볼 때도 편리하다. 집에 있는데 갑자기 의뢰인에게 전화가 오면 나는 바인더를 펼치고 그곳에 빠르게 상담 내용을 적어 내려간다. 그러고 나서 사무실에서 나중에 확인하고 정리하는 일을 한다.


대충 눈치챘겠지만 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바인더와 함께 한다. 업무 중에도 항상 옆에는 바인더를 펼쳐둔다. 이것저것 모든 게 다 적혀 있다 보니 내 바인더는 알록달록하다. 업무는 빨간색, 자기계발은 파란색, 모임이나 친교는 보라색, 육아나 여가 활동은 초록색으로 구별해서 다른 사람 눈에는 복잡해 보이겠지만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하루, 한 주, 한 달, 연간 단위의 계획을 한눈에 보이도록 시각화하기에도 좋기 때문에 나는 플래너만큼은 아날로그를 고집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살아온 시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눈에 보이게 해서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나는 목표와 계획은 눈에 보이도록 해야 실천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바인더에 기록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스마트폰에 시간을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상 시간을 확인하고 다이널리스트 앱에 ‘30 화 7시30 기상 육아’ 이렇게 적어둔다. 나는 기상과 함께 육아를 시작한다. 그리고 점심을 언제 먹었는지, 업무는 언제 시작했는지 등도 스마트폰에 일단 적어둔 후 자기 전에 바인더에 적으면서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보낸 하루가 조금은 특별하고 의미있게 다가온다.


일과 육아를 같이 하면서부터는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을 갖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그만큼 글 쓸 시간도 줄었다. 사실,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인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우선순위를 정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바인더에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이 모든 일은 결국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고민과 노력이 빚어낸 나만의 시스템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이런 시간 관리 시스템부터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혼자 간직하는 일기가 아닌 이상,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만큼 나에겐 시간 관리가 무척이나 소중한 일이다. 시간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한다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래서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시간이 없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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