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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변호사 May 18. 2021

경청, 설득의 힘을 키우는 글쓰기

주인공 마리는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괴한에게 강간을 당한다. 성폭력 피해자로 신고를 했지만 수사는 점차 마리를 의심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결국 경찰은 마리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마리는 허위 신고죄 즉, 무고죄로 기소가 된다. 이렇게 엉뚱하게 결론이 날 뻔했던 사건은 연쇄 강간 사건을 수사하는 두 여성 형사에 의해 밝혀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 『믿을 수 없는 강간이야기』의 내용이다.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중 한 명인 갤브레이스는 ‘경청하고 입증하자’는 수사 원칙을 갖고 있다. 갤브레이스는 ‘무조건 피해자부터 믿어라’가 아니라 ‘피해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갤브레이스의 원칙을 변호사 입장에선 변론 원칙으로 바꿔도 손색이 없다. 의뢰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사실 관계를 확정해 그에 맞는 증거를 찾는 과정이 변호사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다툼이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기관의 힘을 빌린다. 변호사는 그런 의뢰인을 대신해 경찰이나 검찰, 법원을 설득한다. 변호사의 무기는 주장과 증거를 담은 서면(書面)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설득하는 글을 쓴다. 그래서 변호사의 일은 의뢰인의 말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장을 펼치기 위한 전제로서의 듣기


범죄피해가 있어 상대방을 처벌하고 싶으면 ‘고소장’을 써야 하고, 상대방에게 받을 돈이 있으면 재판을 청구하기 위한 ‘소장’을 써야 한다. 이후에는 내 주장을 견고히 하는 의견서와 서면을 쓰는 일이 계속 이어진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대신해서 서면을 쓰지만 사건의 속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의뢰인이다. 결국엔 서면을 잘 쓰기 위해서는 의뢰인의 말을 잘 듣고 사건 기록을 읽으면서 사건 파악을 잘 해야 한다.


정재민 전 판사는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책에서 “판사가 되고 보니 대부분의 시간은 법리 논쟁보다는 사실확정에 할애되었다. 재판의 승패나 유무죄 판단도 대부분 사실확정에서 판가름 난다”고 했다. 사실확정은 법적인 판단을 하기에 앞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사실 관계를 확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A는 B가 주먹으로 자신의 얼굴을 때렸다고 하고 B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다면, B에게 폭행죄를 묻기에 앞서 B가 A를 때린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정하는 게 먼저다. 사실확정을 하고 일반화를 통한 법리를 도출해내는 게 법조인들이 하는 일이다.


변호사인 나 역시도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그래서 의뢰인과 직접 상담하고 소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해서 법적 쟁점을 찾아내고 그에 맞는 증거를 찾아내고 그리고 서면을 작성한다. 그래서 판사로 하여금 서면에 전달된 사실 관계를 믿도록 하는 게 변호사의 역할이다.


변호사는 판사나 검사보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듣는다. 변호사는 의뢰인으로부터 사실 관계를 듣고 기억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사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건 관계자들이 무슨 의도로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주장을 펼치기 위한 필요 질문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모든 행동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는 완벽한 의뢰인도 완벽한 상대방도 없다. 유리한 사정과 불리한 사정이 혼재되어 있는 와중에 유리한 주장은 펼치고, 불리한 사정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뢰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나는 의뢰인에게 진술서를 받기도 한다. 수임을 하기 전 상담에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기 위함이다. 진술서를 토대로 의뢰인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술서에 적힌 사실관계 중에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거나 오류가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뢰인에게 질문을 건넨다. 서면에는 사실 관계가 그림이 그려지듯 구체적으로 서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기억의 오류가 분명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오류가 있다고 해서 의뢰인이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전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뢰인이 진술서를 쓰는데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말로는 할 수 있는데 글은 잘 쓰지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만나서 하나하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봐야 한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경찰조사에서 무슨 질문을 받게 되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예상 질문지를 제공한다. 의뢰인들에게 제공하던 질문지였는데 몇몇 의뢰인 분들이 사실 관계를 정리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말에 지금은 블로그를 통해서도 누구나 볼 수 있게 제공하고 있다. 경찰 조사를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았으면 하는 의미도 있지만, 스스로 질문에 답을 하면서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목적도 있다. 그만큼 사실확정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말 속에 담긴 법적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한번은 의뢰인이 보이스피싱 업체에 통장을 빌려준 혐의로 구속된 사건을 맡은 적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통장을 빌려주면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가 된다. 나는 구금된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구치소에 접견을 갔다. 파리한 모습의 그녀는 접견을 온 내게 살아생전 이런 곳에 올 줄은 몰랐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개인 사업체를 운영했다는 그녀는 채무자들에게 시달렸고 사업체가 넘어가는 일만은 막고 싶었다고 한다. 급한 불이라도 꺼보려고 대출을 알아보았지만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궁지에 몰린 그녀는 스스로 보이스피싱 업체에 통장을 빌려주겠다고 연락을 했고, 자신의 통장에 들어온 돈을 보이스피싱 업체에 전달해주는 인출책의 역할까지 자처했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증거도 있었다. “아니 내 통장을 내가 빌려주겠다는데, 이게 왜 죄가 되는 거예요.” 돈을 받고 통장을 빌려주는 건 죄가 된다고 말한 내게 그녀가 건넨 말이다. 돈이 필요한데 그럼 어쩌느냐는 말과 함께.


의뢰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걸까 부인하는 걸까. 나는 그녀의 말을 ‘돈을 받고 통장을 빌려준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게 죄가 되는지 몰랐다는 법률의 부지(不知)’라고 판단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행동이 죄가 되는지 몰랐다는 이들이 많다. ‘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법언(法諺)이 있다. 우리 법원 역시 법률의 부지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다. 더구나 의뢰인은 이미 한차례 똑같은 사안으로 벌금형을 받은 전과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몰랐다는 말을 재판부에서 믿어줄까 싶었다.


나는 의뢰인에게 무죄를 주장하냐고 물었고, 의뢰인은 정확히 “그럼요. 변호사님, 저는 무죄에요”라고 했다. 당시 나는 법률사무소에 소속된 변호사였기에 의뢰인의 뜻대로 무죄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피고인이 일단 구속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보석을 허가해 달라는 서면(보석허가청구서)부터 썼다.


이 일이 계기가 된 건 아니었지만 당시 나는 법률사무소를 나와 개업을 하면서 이 사건의 변호를 끝까지 맡지는 못했다. 결국에는 실형이 선고됐다는 결과만을 직원을 통해 전해 들었다. 죄를 인정하고 피해 회복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왜 이런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읍소를 했다면, 한번만 선처해준다면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했다면 아마도 집행유예는 선고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었다.


의뢰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경청과 공감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변호사들도 많다. 나 또한 의뢰인의 말을 경청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의뢰인이 자신의 무죄만 주장하고 자신이 이야기한대로만 듣고서 변호해주기를 바라는 의뢰인을 만나게 되면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변호사가 의뢰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그대로 주장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변호사라면 의뢰인의 말 속에 담긴 법적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게 맞다.


충분히 귀 기울여 들어야 오롯이 의뢰인 편에 설 수 있다.


의뢰인들 중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팠던 기억이 떠오르고 그러다보면 눈물이 흘러내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서면에 담을 만큼만 듣고 의뢰인의 감정을 딱 잘라내는 게 힘들 때가 있다. 내가 무슨 상담사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을 쏟아내고 나면 의뢰인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을 건넨다. 난 단지 들어준 것 밖에 없고 크게 공감을 한 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자신을 변호 해주겠다고 나선 사람 앞에서라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할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준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 그것은 변호사로서 의뢰인에게 믿음을 주는 일이다.


2년여의 시간동안 학교 폭력에 시달린 학생을 대리한 적이 있다. 학교나 주변에 알린 적은 없냐는 내 물음에 “누가 제 말을 믿어주겠어요. 저는 이제 선생님들도 안 믿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객관적인 증거 없이는 쉽게 믿어주지 않는 현실을 아이들도 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먼저 생각했다는 게 안타까웠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간 학생은 변호사님이 내 마음을 알아줘서 좋았다고 나중에 학생의 엄마가 알려주었다.


의뢰인 편에 선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변호사를 찾아온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건의 해결인 건 자명하다. 그런데 그 이면엔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좀 믿어줄 누군가를 만나는 것. 든든한 내 편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에서 변호사를 믿고 의지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어느 누가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의뢰인이 힘들게 꺼내 놓은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쓴 서면(書面)에는 설득의 힘이 있을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올해 말 출간 예정인 《변호사의 글쓰기 습관》(가제)의 일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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