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로스쿨>에는 법조인 집안 출신의 강솔B라는 로스쿨생이 나온다. 중학교 재학 시절 법학 논문을 작성한 게 맞는지 의심받자, 강솔B의 엄마는 이런 말을 한다. “애 친가가 대대로 법조인 집안이에요. 집안이 온통 법률 서적에 유치원 때부터 법전을 가지고 놀고 애국가보다 헌법을 더 잘 외웠는데, 타고난 리걸 마인드로 이 정도 실력은 되죠.”
타고난 리걸 마인드(Legal Mind)라니. 리걸 마인드가 타고나는 거라면 집안에 법조인이 단 한 명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참 슬플 것 같다. 물론 법조인 집안에서 태어난 법조인들도 있다. 아버지가 법조인이어서 그 영향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해서 합격했다는 합격기를 본 적도 있고, 주변 변호사들 중에도 자녀가 로스쿨에 재학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운동선수 출신의 자녀들이 다시 운동선수가 되어 기량을 펼치는 것처럼, 법조인 출신의 자녀들에게도 타고난 리걸 마인드가 탑재되어 있는 걸까.
법대 재학 시절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 리걸 마인드이다. 교수님들께서는 두꺼운 법전에 빼곡히 적힌 한자를 암호해독하는 학생들에게 리걸 마인드를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틈만 나면 말씀하셨다. 처음 보는 법률 용어도 어렵거니와 한자도 익혀야 했기에 당시에는 리걸 마인드가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까하는 생각뿐이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리걸 마인드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리걸 마인드가 뭔지도 몰랐고, 리걸 마인드를 기른다고 해서 시험에 합격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리걸 마인드는 어렴풋이 그저 관념 속에서만 존재했다.
사안의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서 리걸 마인드가 필요하다.
법학이라는 학문을 접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누군가 내게 리걸 마인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사실관계를 바라볼 때 법조인들만의 시각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 시각이 정교해서 사건을 제대로 분석하고 사안을 해결하면 리걸 마인드가 뛰어나다고 말한다. 법조인들의 일이라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들을 사실관계에 맞는 법리도출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리걸 마인드는 이 과정에 필요한 사고방식 체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리걸 마인드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1심에서 강제추행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피고인의 가족을 상담한 적이 있다. 피고인이 구속된 경우에는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 가족이 먼저 상담을 요청해오기도 한다. 1심에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사건 기록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1심에서 피고인은 ‘상대방을 만진 건 맞지만 뭘 어떻게 해보려고 만진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를 주장했다. 주장의 요지는 친해서 별 의미 없이 한 행동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관계를 듣고 변호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 판단을 내릴까. 먼저 피고인이 상대방의 신체를 만졌다는 사실에서 ①죄명으로 강제추행죄를 떠올린다(형법이 적용될지, 특별법이 적용될지를 검토한다). ②사실관계에 법조문의 구성요건(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을 하나하나 대입해본다. ③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는지를 검토한다.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판례의 해석을 떠올린다. 판례는 폭행 자체가 추행인 기습추행을 인정하고, 추행행위와 동시에 저질러지는 폭행행위는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일 필요는 없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으면 힘의 대소강약은 불문한다는 입장이다. ④다음으로 피고인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추행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한다. 이 역시 판례의 해석을 참고한다. 판례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추행으로 본다. 따라서 피고인이 만진 신체부위가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만한지를 살펴본다. ⑤성적인 의도를 갖고 만져야만 추행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 법에 없는 내용은 판례로 보충한다. 참고로 강제추행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의사만 있으면 성립한다. 즉, 강제추행죄는 고의만 있으면 성립하고, 그 외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려는 주관적 동기나 목적까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판례의 입장이다. 따라서 피고인이 친밀감의 표시였다고 부인해봤자 소용이 없다. 더구나 만진 신체부위가 성적수치심을 일으킬만한 부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잠정적으로 강제추행이 성립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안 해결을 위해서 피고인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아본다. 1심의 유죄판결을 뒤집어 2심에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합리적인 해결일까. 지금으로선 의뢰인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은 구속을 면하는 것이고, 구속을 면하기 위한 방법으로 집행유예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집행유예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보는 게 합리적인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논리 과정을 풀어 써보았지만 모든 사건이 일목요연하게 순서대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쟁점을 빠르게 정리하는 경우도 있고, 복잡한 사건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차분히 검토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쟁점을 찾아내고 결론을 논리적으로 도출해내는 전 과정에 리걸 마인드가 개입한다.
변호사는 이러한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서면(書面)을 쓴다. 변호사라고 모든 법과 판례를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안을 접할 때 ‘이런 법이 있을 텐데’ ‘비슷한 판례가 있지 않을까’라면서 관련된 법이나 판례를 찾아내 적용할 수 있고, 사안 해결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낼 수도 있다. 법조문도 없고 판례도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런 법리를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근거를 댈 수 있어야 괜찮은 변호사다. 모르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법리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의 저변에 바로 리걸 마인드가 있다.
리걸 마인드를 기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법학은 기본적으로 논리적인 학문이다.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사항을 규율하기 위해서는 보편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므로 논리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리걸 마인드 역시 논리적인 사고가 수반된다. 사실 나조차도 리걸 마인드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해도 될지 잘 모르겠다. 20년 가까이 법을 공부하다보니 이런 사고체계가 체화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리걸 마인드는 반복과 훈련으로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로스쿨>의 강솔B의 리걸 마인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하기보다는 유치원 때부터 법전을 가지고 놀고 애국가보다 헌법을 더 잘 외웠다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처음 법 공부를 했을 때는 난해하고 마냥 어렵기만 했다. 법률 용어는 외계어 같았고 법전의 한자들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한 숨만 나왔다. 그런데 회독수를 늘릴수록 자연스레 암기도 되고 조금씩 체득의 과정에 이르게 되었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는 말처럼, 처음엔 낯설어도 자꾸 보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법률 용어와 법리에 익숙해지면 리걸 마인드도 저절로 길러진다.
변호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우선 의뢰인과 늘 소통해야 하니까 의사소통 능력도 필요하고, 사건 수임을 잘하려면 수임능력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은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이다. 즉, 변호사에게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법리적으로 잘 해석해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 능력의 바탕에 리걸 마인드가 있다.
리걸 마인드를 기르기 위해서는 사건을 다루면서 깊이 있게 공부하거나 관련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판례를 볼 때도 단지 판례의 결론만을 숙지해서는 안 된다. 법원이 판결의 배경이 된 사실관계를 어떻게 확정하고, 문제되는 쟁점을 어떻게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사안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논리구조를 익히고 연습해야 한다. 즉, 법원은 증거에 의해 증명된 것만을 사실관계로 확정하기 때문에, 어떤 증거가 사실을 증명하는지를 유념해서 살펴봐야 한다. 특히 내가 맡은 사건과 비슷한 사실관계를 다룬 판례가 있다면 그 판례의 사안 해결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서면을 쓸 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건과 관련된 모든 요소에는 당연한 건 없다는 자세로 사건을 바라본다.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 한 말과 행동이 통상 납득할만한 것인지,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고 사건의 당사자들은 왜 그렇게 반응하고 행동했는지를 반문해본다. 내가 사건에 대해 갖는 의심이나 쟁점을 검사나 판사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서면에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변호사는 검사나 판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쟁점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할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올해 말 출간 예정인 《변호사의 글쓰기 습관》(가제)의 일부 내용입니다.